[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썩은 사과’ 신원 박성철의 추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미국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표현을 썼다. 임직원들에게 도를 넘은 연봉과 상여금을 뿌리던 미국 금융회사들이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에 손을 내밀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도 이익은 기업 임직원이 챙기고 손실은 세금으로 떠넘기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탈세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그제 구속된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보면서 두 경제학자의 질타를 떠올렸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신원그룹은 1998년 1조 원의 차입금을 안고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해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외환위기 충격으로 수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직장인들이 줄줄이 해고된 ‘고통의 시절’에 신원은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부채 상환 유예와 탕감, 추가 융자를 받았다. 특혜에 가까운 혜택이었다.

워크아웃 기업주는 경영부실 책임을 지고 보유 주식과 자리를 모두 내놓는 것이 원칙이다. 박 회장은 대주주 지분은 포기했지만 퇴진 약속을 뒤집고 회장 자리를 지켰다. 심지어 워크아웃 첫해에 섬유산업연합회장에 취임해 6년간 재임했다. 든든하게 뒤를 봐주는 배경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워크아웃 기간에 재산이 전혀 없는 ‘가난한 전문 경영인’의 이미지를 풍기려고 애썼다. 하지만 2002년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가 공개한 자료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박 회장 일가는 1998년 이후 11번이나 해외에 나가 귀금속 쇼핑 등에 2711만 원을 썼다. 국내에서도 신용카드로 2억8600만 원을 사용했다. 검찰과 국세청은 워크아웃을 악용해 회사 빚을 떠넘겼던 그가 당시 300억 원의 재산을 숨긴 사실을 최근 밝혀냈다.

신원의 워크아웃 졸업과 개인회생 과정에서는 더 노골적이고 대담한 범죄가 등장한다. 신원이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하자 박 회장은 가족 명의로 소유한 광고대행사를 통해 신원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으면서 증여세 등 30억 원대의 세금을 포탈했다. 기업 부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한 뒤 ‘말끔한 회사’의 대주주로 당당하게 복귀한 셈이다. 2011년에는 또다시 개인 재산이 한 푼도 없는 것처럼 법원을 속이면서 개인 회생을 신청해 250억 원의 개인 채무를 면제받았다. 100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나는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살려야 경제에 활력을 주고 국민의 삶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사법 처리된 기업인에게 특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역차별이나 불이익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8·15특사 검토’에 대해서도 법적 요건을 갖춘 기업인의 가석방이나 특사의 필요성에 개인적으로는 공감하는 쪽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박 회장은 ‘썩어도 한참 썩은 사과’다. 틈만 나면 나랏돈을 빼먹으면서 자기 주머니는 몰래 챙긴 행태는 죄질이 특히 나쁜 악성 경제 범죄다. 이런 양심불량 기업인 때문에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떵떵거리며 산다’는 속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도를 넘은 악성 경제 범죄

박 회장은 10년 넘게 법의 빈틈을 악용해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손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했다가 결국 추락했다. 기업친화적 정책으로의 전환은 옳은 방향이지만 도를 넘은 이런 부패 기업인까지 관용의 대상이 될 순 없다. ‘박성철형(型) 악덕 기업주’는 엄정하게 응징해야 ‘경제를 살리는 법치’가 바로 설 수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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