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서울시향 당시 대표가 직원들에게 막말과 명예훼손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불명예 퇴진한 사건이다. 박 전 대표를 둘러싼 많은 루머 가운데 압권은 단연 박 대표의 ‘남성 직원 성추행’ 의혹이었다.
박 전 대표는 모 대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인정받은 성공한 경영인이었다. 더욱이 서울시향은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어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경영능력과 도덕적 자질은 별개’라거나 ‘여성의 리더십’을 싸잡아 비난하는 뭇매가 쏟아졌지만 ‘남성을 성추행하려 한 별난 여성’이라는 오명은 박 씨에게 치명타가 됐다. 직원 17명의 익명 호소문으로 촉발된 서울시향 사태는 결국 1개월 만에 박 씨의 자진 사퇴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6개월여가 지나 서울시향 사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성추행 피해자인 시향 직원 곽모 씨가 지난달 15일 자살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곽 씨는 2013년 9월 중순 14명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뒤늦게 폭로했다. 하지만 당시 회식 자리에 있었던 사무국 직원 중 이를 증언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울시도 자체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성추행 폭로가 진실공방으로 흐르자 경찰이 조사에 나섰고 곽 씨는 경찰 출두 직전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호소문 사태 때 박 전 대표의 폭언을 주장한 사무국 직원들 역시 이를 입증할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사태 당시 녹취자료를 갖고 있다던 한 여성 직원은 “휴대전화를 분실했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확인이 어려워지자 경찰은 3, 4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핵심 진술이 엇갈리는 곽 씨와 정 감독의 비서 백모 씨는 출국금지 상태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시향 직원들이 최근 자신의 변호인을 정 감독의 횡령 혐의 사건을 맡고 있는 변호사로 교체한 것도 공교롭다. 해당 변호사는 지난해 초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잘나가던 이른바 ‘전관’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갑작스럽게 ‘방어 자세’로 전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2013년 시향의 살림살이를 맡은 이후 정 감독과 사사건건 부딪쳤다는 것은 국내 문화공연계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서울시향 사태의 본질을 ‘파워게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시향 사태가 지난해로 만료되는 정 감독의 계약기간과 겹친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만약 이번 사태가 정 감독의 유임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사람을 솎아내려는 ‘조직적 왕따’였다면 이는 명예훼손을 넘어 심각한 범죄다. 시향 직원들의 호소문에서 주장한 내용의 사실 여부가 명백히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하모니가 필수인 서울시향에서 더이상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찰이 신속하고 과감하게 나서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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