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김기춘의 항변과 ‘성완종 특검’ 실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8일 03시 00분


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며칠 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보름 전 ‘성완종 리스트’ 중간 수사결과에 대해 얘기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 씨가 2006년 6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미화 1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출세하면 인권도 없나”


김 전 실장은 “모든 신문과 방송이 예외 없이 ‘공소권 없음’이라고만 보도하더라”며 푸념했다. 검찰의 발표문을 보면 ‘10만 달러는 당시 환율(978원)에 따라 1억 원 미만으로 뇌물 혐의 적용 시 공소시효(7년)가 지났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시효(5년)가 명백히 지나 공소권 없음’이라고 돼 있다.

그는 “발표문에는 분명히 ‘경남기업이 10만 달러를 환전한 내역도 없다’는 내용도 나오고 검찰이 특검을 의식해 수사를 대충 했을 리도 없는데…”라고 했다. 마치 혐의가 있는데도 시효가 지나 처벌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남겼다는 항변(抗辯)이다. 발표문에는 ‘경남기업 임직원에 대한 조사 등 의혹을 뒷받침할 진술이나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명백히 지난 사안은 조사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김 전 실장의 경우엔 해볼 만큼 (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경선자금 7억 원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됐다. 공소시효가 남았다면 김 전 실장도 무혐의로 발표됐을 것이다. 공소권 없음과 무혐의는 어감상 차이가 있다. 그래선지 “출세한 사람은 인권도 없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검찰은 홍문종 의원을 빼고 김 전 실장을 비롯한 친박 실세들을 소환조차 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007년 경선자금이나 2012년 대선자금과 관련된 수사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도 없다. 성 회장 측의 비자금 흐름에 대한 추적과 경남기업 임직원에 대한 조사만으로 무혐의를 내렸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때 김 전 실장에 대해 “정말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이 ‘공소권 없음’ 보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 혹시 자신에게 신뢰를 보낸 박 대통령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꼼꼼한 박 대통령이 김 전 실장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를 놓쳤을 리 만무하다고 본다.


여야 ‘침묵의 카르텔’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사결과 발표 직후 특별검사 도입을 촉구하다 이내 조용해졌다. 이해하기 힘든 야당의 침묵으로 ‘성완종 특검’은 물 건너간 듯하다. 김 전 실장의 10만 달러 의혹을 비롯해 ‘성완종 리스트’에 올랐으나 무혐의 혹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 수사결과를 다시 검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특검을 하게 되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의 의혹을 검증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이인제 김한길 의원같이 유탄을 맞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특검을 해봐야 20억 원 가까운 혈세만 낭비할 뿐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가능성이 별로 없긴 하다. 그러나 ‘성완종 특검’ 실종은 여야가 ‘침묵의 카르텔’을 지킨다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성완종 리스트#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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