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16일 연방수사국(FBI)이 2011년부터 이탈리아 해킹팀의 프로그램을 사들이는 데 77만5000달러(약 8억9763만 원)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FBI는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다만 “사이버안보 차원에서 잠재적 취약점에 대한 식별·평가·테스트는 상시 실시하고 있다”며 “범죄자들이 첨단 기술을 악용하고 있어 새로운 기술 역량을 보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공화당에서도 불법사찰 논란을 벌이는 정치인은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놓고 “국정원이 공작 사찰정치의 온상이 돼버렸다”(문재인 대표)며 “사용자 로그 기록을 제출하라”(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 위원장)고 요구하고 있다. 같은 프로그램을 구매한 35개국 97개 수사·정보기관에 대해 다른 어느 나라 정치권도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안보기밀 자료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정쟁 중단하라”는 안철수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의 구매 시점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때라는 점을 들어 선거 관련 사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스마트폰 상용화 이후 해킹팀이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의 구매 시기도 비슷한 무렵이라는 사실(fact)은 모르는 척한다. 당초 해킹 대상자로 알려졌던 재미 과학자 안수명 박사와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변호사의 경우 안 박사는 미국 정부에서도 대북협력자로 분류된 인물이며, 변호사는 내국인이 아닌 몽골 변호사를 몽골 경찰이 해킹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정치연합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국정원의 불법 감청(도청) 의혹을 적극 수사토록 대통령이 지시했다며 검찰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95분 분량의 ‘안기부 X파일’이라는 도청 자료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던 당시와 해킹 프로그램 구매 외엔 아무런 불법 사찰 증거가 나온 게 없는 현 상황을 동일시한다. 문 대표는 “민주정부에서 사라졌던 도·감청 등 불법 사찰이 이명박근혜 정권서 부활했다”(22일 최고위원회의)고 했다. 2005년 검찰 수사 결과 임동원·신건 등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구속됐다는 엄연한 사실쯤은 가볍게 무시한다. 이런 식이라면 설사 국가정보기관이 기밀준수 의무를 깨가면서 사용자 로그 기록을 통째로 내놓고, 해킹이 대북·대테러 목적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한들 이를 사실로 인정할까 싶다. 컴퓨터 보안 전문가라는 안철수 위원장이 “국정원과 여당은 정쟁을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인 안보에 집중해 달라”고 일갈할 때는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즐겨 쓰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는 듯하다. ‘편향동화’에 빠진 문재인
국정원의 민간 사찰이 있었다면 철저히 단죄돼야겠지만, 이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입각해 진행돼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허술하면서도 거친 공세는 당 혁신안의 부분 통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친노-비노 계파 갈등 및 탈당·분당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외부의 적’을 설정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문 대표와 존재감 회복을 노린 안 위원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어도 무시해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주장은 현명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편향(偏向)동화(biased assimilation)라고 한다. 새정치연합이 국가안보와 정보인권이라는 두 개의 가치 가운데 정보인권에만 매달려 국가안보는 뒷전인 듯한 인상을 줘서야 국민이 나라를 맡기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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