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태풍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자신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태풍의 위력이 소멸됐다 해도 이걸로 끝이 아니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0일 ‘제2의 메르스 공포가 엄습하면’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참석자>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위원 신용묵 한국소비자원 선임위원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 조화순 연세대 교수 박원재 부국장
○ 사회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독자위원회가 새로 구성됐습니다. 선임된 위원들께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메르스 사태가 마무리 단계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는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정부의 부적절한 초기 대응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과잉 대응 또는 언론의 과잉 보도 얘기도 나왔습니다. 앞으로 제2의 메르스 사태가 터져 나올 때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개인은 또 어떻게 할지, 종합적으로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메르스가 낯선 전염병이기에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의료기관과 언론 등도 당황스러웠겠죠. 두 달여 진행된 사태를 되짚어 보면서 이런 사태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조화순 위원=메르스와 관련해 초기엔 사실 보도 위주로 기사가 나왔는데, 사태가 확산되면서 불안이나 공포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치사율이 40%에 달하고 적절한 치료제가 없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독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병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알고 보면 감기의 일종인데, 중동감기라고 부르면 감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메르스라는 이름 때문에 더 큰 공포로 확산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신용묵 위원=소비자 시각에서 말씀드리면 사태 초기에 언론이 병원의 철저한 대응을 좀 더 강조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만 봐도 좋은 자료들이 많았는데 그 내용조차 국민들에게 잘 전파되지 못했습니다.
안민호 위원=메르스 사태에 대한 언론의 대응은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언론이 공포를 만든다’라는 명제는 오래전부터 있던 것입니다. 하나는 언론이 문제를 침소봉대해 불필요한 공포를 만든다라는 측면이 있고 반대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유지될 수 있게 경고의 사인을 준다는 시각도 있죠. 이번처럼 전염병이라는 이슈를 대할 때 언론의 역할은 참 어렵습니다. 전염병 확산 때 ‘대중의 인지’가 중요하므로 위험을 빨리 지각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 정보들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공포로 다가와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죠. 초기엔 메르스 관련 병원들을 실명으로 보도할 수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큰일이 벌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강무성 위원=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라는 소설을 보면 처음에 쥐들이 죽을 때 쥐가 죽고 있다는 얘기만 해요. 쥐가 다 죽고 사람이 죽어가기 시작할 때도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거든요. 나중에 사람들이 전염돼 실체적 위협이 왔는데도 페스트라고 말하는 순간 모두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밝히질 않습니다. 이번에 언론이 위험을 과장했다는 부정적인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시민들의 경각심을 자극해 비교적 지혜롭게 넘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 위원=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병에 대해 인지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환자 발생과 치사율 등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들이 선거 보도에 필적할 정도로 많이 다뤘습니다. 과연 그럴 정도의 사안이었는지에 대해 저는 의견이 다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이미 문제가 된 병원이 어느 병원인지 퍼져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이건 옳은 정보이고 이건 잘못된 정보다, 대처 방안 중에 과잉 부분이 있다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박원재 위원=메르스 관련 보도의 지적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신문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는 지적입니다. 공포심을 자극해서 큰일 날 것처럼 했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지적도 있어요.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고 실제로 사망자가 속출한 만큼 더 제대로 다뤘어야 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는 양쪽으로부터 지적을 받는데 결국 충실한 정보 제공과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안 제시,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위원장=어느 한쪽이 옳다 그르다를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메르스 사태의 성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연 재해나 인재와 다르게 병균에 의한 재해는 현재 진행형이잖아요.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죠. 그러면 장래의 유사한 사태에 대한 대처가 중요한데, 강조돼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신 위원=환자 중심의 정보, 국민 중심의 정보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사나 정부 입장에서 주고 싶은 정보가 아니라 환자나 국민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국민 입장에서 예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안 위원=만약 제2의 메르스 사태가 오더라도 언론이 이번과 달리 절제된 보도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라고 봅니다. 직간접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관여된 사태이기 때문입니다.
조 위원=중요한 것은 전염병과 관련해서 정부가 공개해야 하는 정보와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 정보에 대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관련 병원들 이름이 일찍 공개가 됐다면 공포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박 위원=SNS 등에서 돌았던 정보가 100% 정확한 것도 아니었어요. 되레 혼선을 부추긴 측면도 있습니다. 병원명 공개 여부에 대한 양쪽의 논리가 모두 근거가 있습니다. 결국 공개하니까 잘되지 않았느냐라고 하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공개 결정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강 위원=이와 관련해 프랑스 혁명 당시 결국 단두대로 가게 된 정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의 얘기가 있습니다. 그가 혁명을 이끌 때 내부에 반동세력이 있다는 것을 연설을 통해 밝히지만, 구체적으로 누군지 지목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반동세력인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불안에 떠는 상황을 만들었죠.
안 위원=사실 여부를 떠나 언론 및 정부의 대응에 대해 사람들의 불신이 퍼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선 안타깝습니다.
신 위원=이번 사태처럼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질서가 많이 충돌한 적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도 전문가 취재를 통해 명확한 판단 기준을 내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 위원=동아일보가 독자들의 알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지켜 나가겠다는 선언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조 위원=정보 풍요의 시대지만, 개인이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할지 스스로 잘 모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위원장=처음에 국민들이 놀란 정도에 비해서는 사태가 잘 마무리됐다는 생각은 들지만 마무리가 쉽게 됐다는 것, 그래서 안도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 오히려 향후 유사한 사태 대처에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강 위원=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현대 사회는 활동하기에 참 좋은 상황 아닙니까. 조금 더 센 바이러스가 오면 또 어떤 혼란이 올지 모르죠.
이 위원장=다시 카뮈의 소설 ‘페스트’로 돌아가 보면, “페스트는 사라진 것이 아니고 어느 책갈피나 방구석 등에서 노려보다 우리가 허술하면 다시 찾아와 공포를 줄 것이다”라는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메르스 사태 종식을 선언할 때 지나치게 안도하는 분위기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토의가 혼란의 마무리에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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