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일본이 세운 원폭 사망자 위령비와 불과 이백다섯 걸음 떨어져 있다. 일본의 피폭 70년을 앞두고 지난주 히로시마를 찾았을 때 일부러 거리를 재봤다. 1945년 8월 6일 미군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해 2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중 2만 명은 한국인이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매년 원폭 사망자 위령비 앞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참석하면서 바로 옆 한국인 위령비는 외면했다.
▷원폭 사망자 위령비 앞에는 각종 피해 자료들을 모아놓은 평화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라도 희생자의 유골과 건물 잔해들을 보면 원폭의 가공할 위력과 전쟁의 참상에 말을 잃게 된다. 하지만 기념관에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과 반성을 찾을 수는 없다. 일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에 대한 언급도 없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에 국경이 있을 수 없는데도 일본의 피폭 기억은 인류 보편의 시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한국인 위령비는 공원 외부에 세워졌다가 29년이 지난 1999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2011년 고려대와 와세다대 학생들이 위령비 옆에 추모의 마음을 담아 한국 오엽송을 심었으나 이 또한 수난을 당했다. 지난해 4월 16일 밤중에 나무가 사라졌다. 우익의 소행으로 추정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학생들은 올해 8월 5일 선배들이 기념식수를 한 그 자리에 1m 크기의 오엽송을 다시 심을 예정이다.
▷히로시마는 여전히 ‘두 얼굴’이다. 한국의 주일(駐日) 히로시마 총영사가 평화기념관장에게 한국관 조성을 요청했으나 “외국인 희생자 예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일본은 위령비에 “(전쟁을 일으킨)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겨놓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패전 70년을 계기로 한국인 위령비를 찾는다면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전쟁 책임 인정과 반성이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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