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이스라엘이 포기 않는 스파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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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마타하리, 미션 임파서블, 킹스맨….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스파이들은 매력적이다. 준수한 외모에 컴퓨터 같은 두뇌와 상황 판단, 숨 막히는 액션과 뜨거운 로맨스…. 미국 워싱턴의 ‘국제 스파이 뮤지엄’은 실제로 첩보활동에 쓰였던 신기한 스파이 장비를 전시해 관람객을 끈다. 스파이 세계에 대한 환상을 노린 마케팅이다. 하지만 진짜 스파이, 특히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정보기관 요원들은 생전엔 물론이고 사후에도 존재와 활동이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다.

▷조너선 폴러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논쟁적인 스파이다. 유대계 미국인인 그는 해군 정보국 분석가로 일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감시 네트워크 등 수많은 기밀을 이스라엘에 돈을 받고 넘긴 혐의로 1985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복역 30년 만인 11월 21일 가석방된다. 법적인 요건을 채웠기 때문이라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계들이 끈질기게 석방 로비를 벌인 결과로 보인다. 미국에선 감형과 석방에 반대하는 여론도 높았다.

▷이스라엘은 당초 폴러드가 체포를 피해 망명을 요청했을 때 거부했다. 외교 문제를 우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1995년 그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줬고, 1998년 자국 스파이임을 공식 인정했다. 이츠하크 라빈부터 베냐민 네타냐후에 이르는 역대 이스라엘 총리들은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폴러드의 석방을 요구했다. 중동 협상의 조건으로 내건 적도 있다. 네타냐후는 2002년 옥중의 폴러드를 면회했다. 미국엔 이런 배신자도 없지만, 이스라엘엔 국가가 나서 보호해야 할 애국자였다.

▷국가정보원의 해킹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야당은 국정원에 로그파일 원본을 제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국정원은 정보활동이 노출되면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며 국익에 호소한다. 이번에 국정원은 다른 나라 정보기관 보기가 민망할 만큼 만신창이가 됐다. 국정원이 해킹 장비를 이용해 불법이나 월권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따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거는 스파이들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이스라엘#스파이#조너선 폴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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