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美中데탕트 앞두고 안보부담 줄이려 남북화해 독려
1970년 ‘평화통일구상선언’은 동북아 격변 속 생존전략이었다
초법적 조치 휘두를 수 없는 지금… 부친만한 리더십과 의지없다면
유능한 참모 도움이라도 받아야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전쟁도발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소위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나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해온 종전의 태도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을… 실증해야 합니다.”
1970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광복 25주년 경축사에서 발표한 ‘평화통일구상선언’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 자료를 보니 1970년대는 지정학적 격변과 함께 나라의 명운이 갈린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북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장게릴라를 잇달아 남파해 남에선 사실상 비정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1969년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스스로’를 강조한 닉슨 독트린을 내놓은 미국은 이듬해 한국과는 사전 논의도 없이 주한미군의 3분의 1 감축안을 발표했다. 경제도 순탄치 않았다. 글로벌 경제의 장기 불황에 물가 상승, 무역수지 적자, 실업률 증가의 3중 위기에 1969년 15.9%나 되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70년엔 절반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북에 못 미치던 그때, 박 대통령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통일을 위한 ‘획기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1년 뒤 남북적십자회담을,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선언을 성사시켰다.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어느 체제가 국민을 더 잘살게 할 수 있는지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담대한 제안은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의 명명백백한 승리로 결판이 났다. 남북대화로 시간을 벌면서 초법적 조치로 정치를 옥죄어 경제성장과 국군 현대화 작업에 매진한 결과다.
사방천지를 돌아봐도 빛이 보이지 않던 그 무렵과 또 한 번의 동북아 격랑이 몰아닥친 2015년은 묘하게 겹쳐진다. 신형대국관계를 선언한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에 편승한 일본이 군사대국화에 나선다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 대통령만큼 백척간두에 서 있는 처지는 아닐 것이다.
1972년 미중 데탕트 과정에서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줄이면서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약화시키고 남북 간 화해를 독려하는 전략을 추구했다고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분석한다. 박 대통령은 이런 미국의 지역전략을 염두에 두고 7·4 남북공동성명을 추진하는 한편, 북한에 대응해 경제와 국방을 키우는 전략적 노련함을 발휘했다.
2015년 박 대통령은 미중 간의 민감한 전략관계를 의식하고 외교정책을 펴는 것 같지가 않다. 1970년대의 아버지처럼 초법적 조치로 뜻을 관철할 수 없고, 아버지를 능가할 만한 의지와 예지(叡智),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면 유능한 두뇌라도 빌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은 아버지처럼 듣기 싫은 소리, 나쁜 소식도 가리지 않고 듣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장관들도 보고서 잘 만드는 데 신경을 쓸 뿐, 몸 사리지 않는 유능한 관료와 참모는 아예 ‘수첩’에 없다. 설사 대통령이 북에 밀사를 보내려 한들 나설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버지가 다져놓은 군(軍)조차 장성부터 졸병까지 성(性)군기 문란에 방산비리, 폭력과 나태가 만연하다. 공격을 당하고도 ‘원점타격’은커녕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을지 국민이 되레 걱정할 정도다.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거의 열 달간의 산고 끝에 마지막 관계자회의에선 고성이 오갈 만큼 격론을 벌였다는 1970년의 평화통일구상선언처럼, 2015년의 8·15 경축사도 유능한 참모진의 정밀한 작업을 거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광복 70년을 맞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미래비전이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할 담화의 사죄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부터 납득되지 않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동북아 큰 흐름과 미중, 미일, 중일 관계의 변화를 포착하고 전략적 함의를 읽어내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도 국익을 찾는 것이 외교일진대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신뢰외교’는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진을 두지 않은 대통령은 점점 국민과도 동떨어져가는 모습이다. 1970년대 그 엄혹한 시절을 헤쳐 나라를 지키고 키워냈던 아버지 박 대통령이 아무의 도움도 못 받는 따님을 보며 지하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