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美 정치풍자 제왕의 퇴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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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케이블채널 ‘코미디 센트럴’에서 ‘데일리 쇼’를 16년간 이끈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53)가 지난주 마지막 방송을 내보냈다. “내가 가졌던 이 멋진 기회를 다른 이에게 넘겨 줄 때가 됐다”는 것이 하차이유다. 고별방송 후 “누구도 당신만큼 뉴스를 재미있게 만들고, 코미디를 이렇게 엄청난 뉴스거리로 만들지 못했다”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방송에서 쓰던 책상은 워싱턴의 언론박물관에 소장된다. ‘코미디 센트럴’을 보유한 미디어 기업 비아콤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적 파급 효과도 컸다.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뉴스라고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날카로운 시사 분석에 독보적인 유머 감각을 갖춘 스튜어트는 그날의 이슈를 고품격 정치풍자 쇼로 전달함으로써 전통적인 뉴스 시청 방식을 바꿔 놓았다. ‘데일리 쇼’의 시청자 가운데 80%가 한창 직업 전선에서 일하는 18∼49세라는 점에서 여론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정치와 미디어의 잘잘못을 시원하게 꼬집어 준 덕에 시사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가 뉴스를 접하는 첫 번째 통로가 됐다. 리포터로 출연한 사람 중에서도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후임으로 뽑힌 스티븐 콜베어 등 스타를 배출했다.

▷뉴스와 인터뷰를 살짝 비틀고 유쾌하게 희화화하는 것이 그의 장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4번을 포함해 7번 출연했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 외국 정치인들도 앞다퉈 인터뷰에 응했다. 2007년 대선 후보 오바마를 인터뷰하면서 “작은 나라에서 대통령을 먼저 한 뒤 미국 대통령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미숙한 경험을 꼬집었다. 공화당 밋 롬니 의원 등 정치인의 말 바꾸기를 비판하는 것도 단골 메뉴다.

▷막말 공격 대신 세련된 풍자로 시사 뉴스의 아이콘이 된 그는 지상파와 CNN 등의 쟁쟁한 앵커들을 제치고 2009년 타임지 조사에서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앵커’에 올랐다. 진지함과 위트의 균형을 잃지 않은 덕이다. 한국에선 정치판 소식을 무궁무진한 웃음의 명약으로 바꿔 줄 앵커가 왜 나오지 않는 걸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존 스튜어트#코미디 센트럴#정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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