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은 도적같이 온 것이다. 고로 하늘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미신이라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
함석헌의 말이다. 그의 방점은 흔히 생각하듯이 도적같이 온, 예상할 수 없었던 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해방이 하늘에서 왔다는 데 있다. 해방은 “어느 파(派)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 아니다. 해방은 “선물”이다.
해방은 대가없이 주어졌다
해방은 이승만이 루스벨트나 스탈린의 마음을 움직인 까닭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독립군이나 빨치산이 일본군과 싸워 이겨 얻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해방은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고 하는 자들은 “그림자도 없어져라”고 일갈하고 있다.
함석헌은 마흔 다섯의 원숙한 나이에 해방을 맞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오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옥고도 치른 적이 있는 총명하고도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해방은 선물이었다. 하늘에서 온 선물이라는 것은 미신이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내 적공(積功)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해방을 대하는 겸손한 마음이 거기서 시작된다.
이국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싸운 독립유공자들의 정신은 고결한 것이다. 그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많아야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던 병력으로 일본의 패망에 무슨 기여나 한 것처럼 억지를 부려선 안 된다. 망명 자유 폴란드군은 수십만 명이 연합군의 편에 서서 싸웠는데도 자기 나라를 대가로 받지 못했다. 연합군이 ‘코리아’라고 부른 나라의 해방은 그 말의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선물이었다.
해방정국의 혼란도, 오늘날의 역사전쟁도 해방이 어느 파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한쪽에서는 이승만을 치켜세우고 한쪽에서는 김구를 내세우고 또 한쪽에서는 김일성이나 박헌영, 아니면 여운형 같은 중도파에서 정통성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역사관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에 동참하면서도 이승만의 독재와 싸웠던 세력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다. 다만 어떤 역사관을 갖든지 해방을 직접 맞았던 당대인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
나의 할아버지는 해방 때 서른 무렵이었다. 그는 더 젊을 때 만주에도 갔었으나 돌아와 가난한 농민으로 해방을 맞았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해방은 어떤 것인지 미처 물어보지 못했지만 함석헌의 다음 말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해방에 관련된 자가 있다면 그는 무지한 민중뿐이다. 무지한 한 가지 원인으로, 맘이 못 생긴 한 가지 탓으로, 황국신민(皇國臣民) 노릇도 잘 못하고, 출세도 잘 못하고, 외국으로 도망(逃亡)도 못하고, 시세(時勢)에 맞출 줄을 몰라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조선을 못 놓고 조선 땅을 못 떠난 민중이다.”
해괴한 역사전쟁 집어치워라
선물은 그 선물을 어떻게 간수했느냐에 의해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값없이 주어진 나라를 얼마나 먹고살 만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논점에서 벗어난 역사전쟁은 해괴한 것이다. 함석헌이 살아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해방이 어느 파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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