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자위대 군사훈련을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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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섬을 점령하기 위해 상륙한 적 부대가 육지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F-2전투기가 공격을 위해 출동했습니다.”

레이저 유도 폭탄이 굉음과 함께 후지 산 중턱에 명중했다. 이어 30mm 기관포를 장착한 아파치공격헬기(AH-64D)가 ‘타타타’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지켜보던 일본 시민 3만여 명은 일제히 “와∼” 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남북한이 일촉즉발의 대치를 이어가던 23일 오전 10시. 일본 도쿄(東京) 도심에서 서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시즈오카(靜岡) 현 고텐바(御殿場) 시 ‘히가시후지 군사연습장’에서는 자위대 최대 규모의 실탄사격 훈련인 ‘후지종합화력연습’이 열렸다.

대원 2300여 명, 전차와 장갑차 80여 대, 화포 60여 문, 전투기 20여 대 등 육해공 자위대가 총동원된 훈련이었다. 예정된 연례 훈련이었지만 한반도에 긴박한 상황이 벌어진 와중에 실시되어서인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훈련은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염두에 둔 게 역력했다. 일본의 한 섬이 공격받는다는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해상초계기가 자위대 본부에 ‘적 출현’을 보고하자 F-15가 발진했고 패트리엇 미사일과 이지스함, 지대공미사일이 적의 공군 전력을 무력화했다.

이런 상황이 실제 펼쳐진다면 매우 아찔할 것이 분명하지만 행사장은 축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들뜬 분위기였다. 자위대는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훈련 과정을 고화질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했다.

자위대는 1966년부터 매년 국민에게 훈련 과정을 공개하는 행사를 해왔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국가와 국민을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최근 4년 연속 ‘일본인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으로 자위대가 선정된 것을 보면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이다.

최근에는 중국과 북한 위협에 대한 안보 민감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인지 일반인 참관 경쟁률이 갈수록 높아져 이날은 역대 최고인 29 대 1이었다. 참관인들은 친구, 연인,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까지 다양했다. 훈련이 끝나자 삼삼오오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직접 보니 대단하다” “자위대가 있으니 안도가 된다”고 했다. 연이은 추락사고로 일본 내 추가 도입을 두고 논란이 일던 수직이착륙기 MV-22 오스프리까지 모습을 드러냈지만 비판 여론은 없었다.

자위대는 최근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힘을 키워가고 있다. 방위비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취임한 뒤 3년 연속으로 올렸고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5조 엔(약 48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기 수출도 할 수 있는 등 족쇄도 풀리고 있다.

이날 일부 참관인들은 ‘강한 일본’에 대한 향수와 함께 ‘반한(反韓)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대부분이 인터뷰를 거절했다. 한 중년 일본인 남성은 신경질적인 말투로 “우리는 한국인을 싫어한다”고 기자에게 대놓고 말했다.

안보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정권은 한반도 긴장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22일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 등을 거론하며 안보법안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자위대 훈련은 겉으로는 화려한 군사무기의 향연과도 같았지만 육지 해상 군사 충돌 시 일본 군 대응을 추정해 볼 수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참관인들의 혐한 분위기와 자위대 군사훈련이 겹쳐지며 머리가 무거워졌다.-고텐바에서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자위대#군사훈련#후지종합화력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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