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이 요동치고 있다. 구조조정과 개혁이라는 수술대에 올라야 할 대학들은 생존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8일 ‘대학 구조개혁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참석자>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위원 신용묵 한국소비자원 선임위원 강무성 도서출판 루페 대표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 조화순 연세대 교수 하종대 동아일보 부국장 ○ 사회 유종헌 동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8월 31일 교육부가 대학의 구조개혁 평가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장 정원 감축과 학자금 대출 제한 등의 제재를 받게 되는 학교들은 거센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독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 언론은 또 이런 개혁의 물줄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학생 수는 줄고 있는 반면 대학 수는 크게 늘었고, 질적 저하까지 겹쳐 대학의 구조개혁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대학은 기본적으로 헌법에 의해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번 정부의 구조개혁도 교육을 통제하려는 것이냐,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냐,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개혁이 대학의 독립성을 그 나름대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통제를 강화하려는 건지 언론이 살피고 분석해 방향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조화순 위원=대학 개혁의 문제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크고 긴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곧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자의 수를 넘어서게 되는 사회 변화의 틀 속에서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군 단위에도 대학이 들어서고 있고, 전체 고교생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합니다. 이는 일자리 창출이나 부모의 노후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변화된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는 것이죠.
안민호 위원=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정원 감축을 대학에만 자율적으로 맡기는 것은 무리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 자율에 맡길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에게 가기 때문에 대학의 변화에도 연착륙이 필요합니다.
신용묵 위원=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무엇보다 학교의 환경이나 구조, 시스템 등에 대한 디테일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구조개혁을 자율적으로 하라고 하지만, 자율적으로 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건 좋은데 교육 소비자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정부의 세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의 의견을 들으면서 규제와 통제의 디테일을 업그레이드해 가면 연착륙이 되지 않을까요. 강무성 위원=저는 이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대학이 그동안 제대로 미래를 전망해 인재를 양성한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금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가 유전자공학이나 생명공학 아닙니까. 그 뿌리를 찾아가면 농과대학이죠. 1980년대 농과대학은 이른바 비인기학과였습니다. 그때 만약 학과 통폐합을 해서 농대를 사라지게 했다면 지금 유전자공학 분야가 꽃피울 수 있었을까요. 대학 구조조정의 주원인이 학령인구 감소라지만 그것만 고려해 정책을 편다면 헛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은 정원을 덜 줄이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많이 줄이겠다는 식의 근시안적 시각은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조 위원=미래 예측과 대학 구조조정이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사실 좀 걱정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군 단위까지 대학이 생긴 건 김영삼 정부 때 이뤄졌던 대학 규제완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봅니다. 20년 전인데 그때는 인구감소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못했던 것이죠.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이전하고, 융합적으로 사고하고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학 구조개혁이 좀 더 미래 예측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 위원장=역시 눈앞만 보고 판단하면 위험할 수 있겠습니다. 대학 구조조정 평가가 발표된 후 대학가는 대학 나름대로 불만이 많아 보입니다. 평가의 기준과 방법이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느냐 하는 비판도 나오는데 동아일보가 본 실상은 어떻습니까.
하종대 위원=이번 평가에서 교육부는 60개 지표를 내세웠습니다. 교육여건, 학사관리, 학생 지원, 교육성과 등이죠. 60개 지표를 언론이 일일이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구조개혁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지, 무리한 측면은 없는지 등은 앞으로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원 감축은 법적으로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안 했을 경우 정부가 재정지원과 장학금 대출 등을 줄이겠다고 하니 결국 강제가 되는 셈입니다. 학생들이 대학을 못 다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위원장=구조개혁 과정에서 학부모나 학생 시민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 객관적인 작업을 했는지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신 위원=정부가 개방, 소통, 협력을 표방하지만 교육 소비자들의 의견 수렴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학생들의 마음에 ‘난 삼류대학 학생’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서는 안 됩니다. 국공립대, 사립대 간에는 설립 목적부터 차이가 있고, 학사 지원이나 예산 지원도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런 부분까지 세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하 위원=정부 평가와 별도로 언론도 대학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의 경우 취업 창업과 같이 학생들에게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느냐 하는 것을 지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입학할 때 학생이 가진 잠재능력과 학업능력이 졸업할 때 얼마나 배가됐는가 하는 점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신 위원=동아일보의 기획 중 창업 강조가 특히 눈에 띕니다. 거기에 필요한 과목들이 실제적으로 학사 운영에 반영되고 있느냐 하면 아직은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조 위원=얘기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서 대학 개혁은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봐야 하고,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꼭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공교육 문제를 논의할 때 이해당사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는 않습니다.
―구조개혁 방향 자체는 옳을 수 있지만 대학들의 반발을 보면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송 사태 등 후유증이 길어지면 결국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언론이 균형 있게 짚어야 할 것입니다.
안 위원=정부 평가가 공정하고 타당한 평가였는지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원 충원율 등은 일률적인 잣대보다는 대학별 학과별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정부 평가든 언론사들의 평가든 대학들이 건전한 발전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긴 합니다.
강 위원=대학 평가도 당장 눈앞 현상보다 미래의 이익에 맞춰 보도해야 대학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조 위원=대학이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 학문 다양성의 필요성을 말씀해 주셨는데 보완 장치로 이중전공 연계전공 등이 있긴 하지만 현재의 학과제 정원 틀 속에서는 한계가 많습니다. 인문학이나 기초교육은 교육현장에서 매우 중요하거든요.
안 위원=저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대학 내에서 정원감축이 논의되면 비인기학과가 타깃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대학 구조개혁 과정에서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위원장=대학의 구조개혁도 당장 눈앞의 어려운 점을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보고 갈 것인가,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보입니다. 오늘 논의가 정부 정책에도 잘 반영돼 한국을 살리는 대학 개혁이 되길 바랍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