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어느 모녀의 특이한 SNS 소통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8일 03시 00분


에밀리가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 왼쪽은 에밀리커플, 오른쪽은 에밀리의 부모가 이를 따라해 올린 사진. 트위터 캡처
에밀리가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 왼쪽은 에밀리커플, 오른쪽은 에밀리의 부모가 이를 따라해 올린 사진. 트위터 캡처
‘요즘 젊은 애들은 우리 때랑 너무 달라….’

다소 보수적인 제 부모님은 자주 이렇게 운을 떼곤 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요즘 젊은 애들의 연애 문제’. 특히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아닌데도 단둘이 장기 여행을 간다든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서로의 애인을 공개하며 함께 알콩달콩 찍은 사진을 올린다든지 하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죠.

그래서 미혼인 저에게도 종종 주의를 줍니다. “지연아, 너는 남자 친구랑 찍은 사진 같은 거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러면 안 된다” 하고요. “도대체 왜? 요즘 다 그래. 그게 뭐 어때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어느 날 모른 척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어지게 되면 곤란하잖아. 나중에 네 남편 될 사람이 그런 사진 발견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얘는 뭘 몰라도 한참 몰라….”

이런 집안 분위기와 정반대인 곳도 분명 있는 듯합니다. 최근 한 미국인 부모가 자기 딸이 애인과 찍은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패러디해 SNS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뉴욕에 사는 에밀리 무손이라는 여성이 사귄 지 2주 되는 새 남자 친구와 셀프카메라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를 본 에밀리의 엄마가 남편과 그 포즈를 똑같이 따라해 사진을 찍고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겁니다. 사진 속 부모는 에밀리의 남자 친구가 딸을 뒤에서 껴안고 목에 키스하는 모습, 함께 선글라스를 낀 채 턱을 괴고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 등을 정확히 재연해 냈습니다.

에밀리는 자신이 올렸던 사진, 그리고 부모가 이를 따라 올린 사진을 좌우로 함께 배치해 편집한 뒤 이를 트위터에 다시 게시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분명 마약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을 한 게 틀림없다”는 익살스러운 문구와 함께 말이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해당 글은 하루 새에 트위터로 6만 건 가까이 리트윗 됐고, 페이스북 ‘좋아요’ 클릭 수는 3만 건을 훌쩍 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신문 위키트리가 해당 게시 글을 기사화하면서 160만 건이 넘는 조회를 기록했죠.

게시물을 본 사람들은 에밀리 부모에게 ‘정말 멋지다(AWESOME)!’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내 누리꾼들도 “우리도 아기가 커서 저러면 저렇게 놀려 주자”, “센스 넘치는 부모님”,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등의 감상 평을 남겼죠.

국내외를 불문하고 에밀리의 게시물이 이토록 많은 관심을 끈 이유는 뭘까요. 일단 부모가 자기 딸의 커플 사진을 패러디했다는 설정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일 겁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부모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 하나 더. 그건 바로 ‘딸이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든 개의치 않겠다’는 부모의 쿨한 태도를 향한 부러움일 테죠.

물론 에밀리의 엄마는 한 뉴욕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딸이 남자 친구와 키스하며 장난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자주 올린다”며 “그 모습이 남들 눈엔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 내가 따라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에밀리를 비꼬는 투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딸의 일상을 관심 있게 지켜봤던 한 부모의 귀여운 변명 수준이었죠. 사진을 처음 보고 에밀리 엄마는 남편에게 “우리도 얘네처럼 찍어 볼까? 정말 재밌을 거야!” 하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말이죠.

제 주변엔 에밀리와 달리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의 존재를 부모님께 공개하지 않는 지인이 여럿 있습니다. 지나친 관심과 간섭이 귀찮고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 말이죠. 그래서 부모님과 일부러 페이스북 친구를 맺지 않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커플 사진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저희 엄마가 제게 그러시듯 “언제부터 만났니?” “뭐 하는 애니?” “일찍일찍 다녀라” 등 잔소리가 시작될 거라며 걱정하더군요.

지금의 애인과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현재의 만남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또 장난스럽게나마 공감해 주는 것. 순간의 기록을 SNS에 남기고 싶어 하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건 그리 큰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지연 오피니언팀 기자 lima@donga.com
#모녀#소통#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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