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미국의 외교관계 회복에 중재역할을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집을 찾아 첫 만남을 가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만날 때 복장에 신경을 쓸 만도 한데 카스트로는 세 줄 무늬로 유명한 아디다스(Adidas)의 ‘퍼런 추리닝’ 윗도리를 와이셔츠 위에 걸친 차림이었다. 그는 3년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쿠바를 방문했을 때는 머플러를 두른 외투 차림으로,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때는 정장 차림으로 만났다. 89세인 만큼 이젠 격식에서 자유로워진 것일 수도 있지만 특정 브랜드 집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06년 8월 쿠바 정부는 당시 장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카스트로의 사진을 공개했다. 흰색 바탕에 빨간색 줄이 그려진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아디다스사는 “우리는 쿠바 올림픽 대표팀을 후원할 뿐 카스트로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부랴부랴 해명을 내놨다. 카스트로가 세계적 유명 인사이기는 해도 스포츠업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싫어하는 만큼 마케팅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까 우려했을 것이다,
▷공산혁명으로 권좌에 오른 카스트로가 평소 즐기는 차림은 군복이었다. 평생 혁명가로 살아온지라 수술까지 받은 고령임에도 카스트로는 환자복보다 운동복 차림이 사진을 찍으면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나온다고 여겨 입기 시작했다. 나이키 푸마 제품도 입었지만 선호 브랜드는 아디다스다. 안타깝게도 타임은 2010년 최악의 옷차림 세계 지도자 10명을 꼽으면서 ‘아디다스 제공’이라는 제목으로 카스트로를 포함시켰다. 카스트로의 굴욕인지, 아디다스의 굴욕인지.
▷작년 12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쿠바는 오랜 제재에서 벗어나 침체된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북한에선 김정은이 수입품 만연을 질타한 뒤 매체에 등장하는 운동선수들이 아디다스 같은 유니폼의 영문 브랜드를 테이프로 가리는 일이 벌어졌다. 거리낌 없이 아디다스를 입는 카스트로를 보면 김정은도 느끼는 바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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