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일주일 전 미국 공화당 대통령 경선 2차 토론에서 후보자 11명 중 가장 돋보인 사람은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CEO)였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턴트에서 29%가 피오리나를 승자로 꼽았고 그간 돌풍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는 2위(24%)로 추락했다. 한 달 전 1차 토론에선 그저 그런 후보 중 한 명이었던 피오리나는 공화당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피오리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이는 엉뚱하게도 트럼프였다. “저 얼굴 봐라. 누가 저 얼굴에 표를 주겠나.” 아무리 막말의 대가라지만 여성의 외모를 비하한 데 대한 역풍은 거셌다. 피오리나는 “내가 61세까지 살아온 한 해 한 해와 얼굴의 모든 주름이 자랑스럽다”는 말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여심을 파고들었다. 남성 중심의 정보기술(IT) 업계 시절 남자들이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미팅 장소를 스트립클럽으로 잡았을 때도 피하지 않았던, 피오리나다운 대응이었다.
▷스탠퍼드대 출신인 그는 로스쿨을 중퇴한 뒤 비서로 출발해 포천지 선정 20대 기업 중 최초로 여성 CEO가 된 인물이다. AT&T, 루슨트테크놀로지를 거쳐 5년 6개월 동안 HP를 이끌었다. 2001년 컴팩 합병은 그가 벌인 가장 큰 사건이다. 덩치는 커졌지만 주가는 떨어졌고 결국 피오리나는 쫓겨났다. 그래도 자서전 ‘힘든 선택들’에서 이 결정에 대해 “두려움에 젖어 평생을 살아온 터라 두렵지 않았다.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고 했다.
▷CEO로서의 능력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리지만 정치인 피오리나는 검증되지 않았다. 공약도 모호하다. 그 대신 그는 2009년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딸 로리 앤을 내세워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이지만 피오리나에게는 친딸과 다름없다. 강성 CEO의 이미지를 자식 잃은 엄마라는 가족사로 희석시키려는 전략이 먹힐지, 인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래도 미국 대선이 ‘클린턴 대 피오리나’의 여여(女女) 구도로 치러진다면 최고의 흥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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