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10>김철호 본아이에프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3일 03시 00분


부도… 거리 호떡장사… 죽 창업으로 인생역전

김철호 본아이에프 회장이 자수성가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철호 본아이에프 회장이 자수성가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호떡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1998년 30대 남자가 서울 세운상가 부근 호떡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계속 찾아갔다. 감복한 주인은 “양복 차림이라 진정성이 없는 줄 알았다”며 반죽 비법을 알려줬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도 한때는 잘나갔다. 충남대 국문학과를 마치고 1988년 한국일보 광고국에 입사했다가 인삼사업이 괜찮다는 고향 선배의 얘기를 듣고 회사를 그만뒀다. 1993년 우신산업을 세워 인삼 생산과 판매를 하다 다이아몬드 유통, 통신판매 등에도 손을 댔다. 1995년 순식물성 목욕용품을 수입해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가맹점 400개에 연매출 500억 원을 올렸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외환위기로 환율이 치솟고 자금이 안 돌면서 부도를 맞았다.

“재기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버텼다.”

집까지 잃고 빈털터리가 된 그는 숙명여대 인근 요리학원에서 무료로 요리를 배우는 대신 월급 없이 총무로 일하며 재료 준비, 청소 등을 했다. 아이가 3명이나 있는 집에 월급을 못 갖다 주자 살림은 엉망이었다. 돈벌이가 절실했다. 원장은 학원 앞 공터에서 오후 4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호떡을 팔 수 있게 해줬다. 호떡 만드는 방법은 그래서 배웠다. 리어카에서 호떡을 크게 만들어 3개를 1000원에 팔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실업자가 늘면서 창업할 수 있는 요리 과정이 있느냐고 묻는 전화가 학원에 종종 걸려 왔다. 당시 학원은 조리사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요리를 가르쳤다. 창업 과정을 만들자고 했으나 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격증 취득 요리가 아니라 창업 요리를 가르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1999년 창업요리학원을 열었다. 개업 중인 요리사를 초빙해 칼국수 우동 돈가스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쳤다.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가게를 어디에 내면 좋겠느냐” “인테리어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내친김에 음식점 창업 컨설팅을 시작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자금을 댔던 지인이 학원과 컨설팅을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죽은 웰빙 음식이다.”

음식점 창업 컨설팅을 할 때 여러 사람에게 권유했으나 모두 거절했던 죽집을 열기로 했다. 과외, 보습학원 강사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던 대학 1년 후배 부인은 하던 일을 접고 6개월간 죽만 쑤며 메뉴를 개발했다.

김철호 본아이에프 회장(52)은 2002년 9월 서울 대학로 길가가 아닌 뒷골목 건물 2층에 80m² 규모로 죽집 ‘본죽’을 냈다. 기존 가게가 폐업한 뒤여서 권리금도 없었다. 창업 컨설팅을 하며 알게 된 지인들이 “성공한 뒤 갚으라”며 간판과 설비를 해줬다. 타깃 고객을 환자가 아닌 일반인,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으로 정하고 인테리어를 카페 형태로 꾸몄다.

김 회장은 양복을 입고 부인과 지하철 혜화역 출구에 나가 행인에게 90도 인사를 하면서 전단을 건넸다. 첫날 손님 20명이 가게를 찾았다. 고객의 주문을 받은 뒤 죽을 쑤다 보니 늦게 나온다고 항의하거나 돌아가는 손님도 있었다. 여러 종류의 죽을 한꺼번에 빨리 만드는 게 과제였다. 시행착오 끝에 10분 내 죽을 쒀 내놓을 수 있는 표준 조리법을 개발했다. 맛있는 죽을 혼자 다 못 먹을 만큼 많이 주는 카페 같은 죽집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렸다. 목표였던 하루 100그릇 판매를 개업 3개월 만에 달성했다.

가맹점을 내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았다. 가맹사업에 나선 지 7년 만에 가맹점이 1000개를 넘어섰다. 폐업률은 2% 수준이다. 2006년 본비빔밥, 2009년 본도시락, 최근에는 본설렁탕을 론칭했다.

고비도 있었다. 2011년 일부 가맹점이 남은 음식을 재활용하는 모습이 TV에 보도됐다. 비난이 쏟아졌다. 모든 가맹점과 본사는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절감했다. 김 회장은 가맹점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맛, 재료, 위생 등 기본과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가맹점주에게 주문했다.

“한식 세계화는 꼭 이뤄야 할 과제다.”

김 회장은 환자나 먹는 음식으로 여기던 죽을 산업화해 시장을 3000억 원 규모로 키웠다.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2006년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등에 13개 매장을 냈다. 초기엔 ‘한국식’을 고집하다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현지 문화와 현지인 입맛을 반영한 메뉴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 회장은 세계에서 5000개 가맹점을 운영하는 최고 한식 프랜차이즈 기업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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