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직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6일 03시 00분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0월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확실시된다는 말이 돌았다. 청와대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정상명 검찰총장은 사법시험 동기인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검찰총장으로 가선 안 되는 이유를 30분 가까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8년 만의 ‘TK총장’ 나오나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 총수로 직행하면 조직체계가 무너진다는 논리였다. 총장 후보군에 들어가는 순간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수사지휘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게 된다. 그 순간 검찰총장은 허수아비로 고립되고 검찰 조직은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3배수 후보 중 임채진 법무연수원장이 차기 총장에 내정됐다.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지 10년 세월이 흘렀다. 과거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되려면 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두세 자리를 거쳐 총장 후보에 올랐다. 정 전 총장의 소신은 확고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사를 직접 지휘하며 갑옷에 피를 흥건하게 묻힌 장수와 같다. 거악(巨惡)과 혈전을 치른 장수에겐 적도 생기고 호흡도 거칠어져 숨을 고르는 휴식기가 필요하다.”

검찰사상 서울중앙지검장이 총장으로 직행한 사례는 단 한 번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월 말 극히 이례적인 검찰 인사가 났다. 한상대 서울고검장을 같은 고검장급이지만 서울중앙지검장에 역진(逆進) 발령 낸 것이다. 검찰 안팎의 우려대로 그 인사의 폐해는 컸다. 그는 6개월 뒤 검찰 총수에 올랐으나 ‘검란(檢亂)’ 파동으로 임기를 못채웠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을 둘러싼 말들이 무성하다. 대구경북(TK) 출신인 정 전 총장에 이어 8년 만에 ‘TK 검찰총장’이 다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직에서 발탁할 경우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김수남 대검 차장, 이득홍 서울고검장,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누구는 “유승민과 가깝다”, 누구는 “너무 저돌적이다”는 마타도어성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김진태 검찰총장의 임기가 12월 1일까지여서 곧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되면 총장 후보를 3명으로 압축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훨씬 세졌다. 2013년 4월 검찰총장의 직할 대검 중수부가 문패를 내린 후 명실상부한 검찰 조직의 2인자로 부상했다. 기존의 특수 1, 2, 3부에 4부를 추가했고 수사 인력도 대폭 증원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이 압수수색한 것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전 정권 인맥을 겨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권 교체 후 전 정권의 비리 제보가 쏟아지거나 과거에 입수해 캐비닛에 넣어둔 첩보를 바탕으로 검찰이 수사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정권 중반기를 넘어 그런 수사가 계속 이어지면 ‘죽은 권력 칼질하기’ 같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靑 입맛에 맞는 前 정권 수사

‘인사(人事)는 정실(情實)’이라는 풍자도 있지만 인사권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쓴다. 그러나 검찰 조직을 멍들게 하면서까지 정실인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잘 드는 칼을 지닌 서울중앙지검장이 자리 욕심을 내면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이웃 일본에서도 도쿄지검장이 바로 검찰총장에 오른 예는 없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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