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추석 연휴 기간인 28일 부산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만나 내년 총선 공천에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의견 접근을 이뤘다. 그러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수를 정하는 총선 룰 합의에는 실패했다. 여야 대표가 시간을 다투는 선거구 획정에 필요한 합의는 팽개치고 당내 문제나 다름없는 공천 룰에만 의기투합한 데다 하필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국내를 비운 틈에 이뤄진 일이라 온갖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여당에선 일대 분란까지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채택했던 오픈프라이머리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국민이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선 비슷하나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국민이 후보 경선대회에 직접 참여해 투표하는 것이고, 후자는 누군지 모르게 휴대전화의 개인 정보를 감춘 상태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김 대표로서는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장담했던 오픈프라이머리가 야당의 거부로 물 건너가자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유사한 차선책을 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론 변경 사항을 당내 논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야당 대표와 먼저 논의하고 ‘잠정합의’까지 한 것은 문제가 있다. 더구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주도해 채택한 야당의 ‘선거인단 국민공천제’와 흡사하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공천 혁신안을 따라감으로써 문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다. 사전 물밑 접촉이나 조율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문 기득권 담합’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 대표는 두 차례 공천 탈락 경험에다 계파 갈등이 공천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에서 국민공천제에 매달렸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실질적 오너인 박 대통령의 공천 영향력을 약화시켜 김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려는 포석이라는 친박(친박근혜)계의 의구심이 강하다. 김 대표가 무산된 오픈프라이머리에 이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다시 쐐기를 박았으니 공천 룰을 둘러싼 친박과 비박의 갈등으로 당은 심각한 내홍에 빠져들게 됐다.
오늘 공천 룰과 총선 룰을 논의할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계파 간 본격적인 ‘공천전쟁’의 시발점이 될 공산이 크다. 결과에 따라 김 대표의 정치적 명운이 좌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무관하게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 무산에 대한 자신의 견해부터 국민에게 밝히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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