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전세 전쟁이다. 서울 강남권은 6년째 계속되는 전세난에다 재건축 이주 시기까지 겹쳐 최악의 전세 대란을 치르고 있다. 강남에 사는 기자도 이 전쟁에 홍역을 치렀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 고객이 전세금은 얼마든지 내겠다며 풍수사를 동원해 좋은 터를 찾는다고 해서 무려 50여 군데나 소개해 준 적이 있다.”(강남구 역삼동 K부동산)
“직접 L로드(수맥탐사 장비)를 들고 남의 집에 들어가 이리저리 수맥을 검사하고 나서 전세 계약을 한 대학 교수도 있었다.”(서초구 우면동 L부동산)
전세금이 집값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수맥 같은 해로운 기운이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고객이 수맥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아∼, 그러세요” 하며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서초구 양재동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아예 수맥 찾는 법을 배워 원하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수맥과 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풍수지리에서 물은 길(吉)과 흉(凶)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명당의 필수 조건으로 생기(生氣)를 활성화시키는 물은 ‘양수(陽水)’라고 해서 좋은 물이다. 터를 활처럼 휘어지듯 감싸고 도는 강이나 하천, 저수지 등 지상에 노출된 물이 그렇다. 부자가 되려면 물을 얻어야 한다는 ‘득수(得水)’의 논리도 양수에 관한 것이다.
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속에 존재하는 지하수 같은 물은 음수(陰水)라고 한다. 사람의 피는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듯, 땅속으로 흐르는 음수가 모두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음수가 거대한 암반에 갇혀 오랜 세월 고여 있거나 우라늄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에 오염된 경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물에서 나오는 기운은 파동(波動)의 형태로 지상으로 뚫고 나와 사람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이를 수맥(혹은 수맥파)이라고 해서 ‘나쁜 물’로 분류하는 것이다. 풍수의 논리로는 땅속의 살기(煞氣)라고나 할까. 따라서 수맥은 모든 음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 왜곡되거나 교란된 음수 중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파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반적으로 수맥이 지나가는 터에 살면 건강이나 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들 한다. 물론 증거와 객관성을 중시하는 과학계에서 받아들이는 이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수맥으로 인한 피해가 엄연히 존재하고, 또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대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수맥을 지자기(地磁氣) 교란 현상으로 규정하고, 지자기 교란 수치가 평균보다 150% 정도 높을 때 인체에 이상 증상을 일으킨다고 보고한 바 있다. 사람이 수맥에 노출되면 뇌의 지각기능과 시각의 신경생리적 기능이 떨어진다는 국내 의학자의 논문도 있다.
기자는 수맥파 영향을 받는 잠자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머리가 계속 아프거나 무기력, 불면증, 불안 초조, 집중력 저하 등을 호소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 또 공부방이 수맥에 노출된 학생들의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도 보였다.
수맥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이 인체에 유해한 수맥파를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지하 암반에 갇힌 썩은 물에서 나오는 ‘암반 수맥파’는 사방팔방 불규칙적으로 방사되기 때문에 한 방향만의 수맥을 측정하는 L로드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구조물 상태나 자연현상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를 테면 건물 벽이 세로로 금이 가고, 바닥이 꺼지듯 내려앉거나 금이 간 경우, 까닭 없이 전자제품의 고장이 잦다면 수맥파의 영향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수맥파가 사람에게는 이롭지 않지만 다른 종(種)에게는 필요한 기운이라는 주장도 있다. 벌이나 개미들은 한결같이 수맥 지대에 집을 짓는다. 고양이도 수맥 지대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통해서도 수맥파를 확인할 수 있다.
한쪽에 해로운 것이 다른 쪽에서는 유용하니, 자연은 참으로 공평한 듯싶다. 수맥에 대처하는 법은 다음 칼럼에서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