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카메라를 피해 버스전용차로와 일반차로를 제멋대로 들락거리는 무법자.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부딪치면 네 손해’라는 식으로 일단 들이밀고 보는 고급 승용차를 탄 얌체족. 이런 반칙운전을 보다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얌체 대열에 가세해 ‘질서의 대오’는 무너졌고, 병목 구간에는 없던 차로가 생겼다.
고향 가는 길이야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에 너그럽게 넘어가도 ‘다시 일터로 향하는’ 귀경길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귀경길은 왜 이리 유독 더 막히는지’ ‘반칙운전자는 왜 눈에 더 뜨이는지…’ 분노의 경적을 울리며 분을 삭여보지만 간혹 창문 내리고 째려보는 험상궂은 눈초리에 시선을 돌리고 마는 이 비루한 심정이란…. 나흘의 달콤한 연휴로 얻은 넉넉해진 마음이 운전대를 잡은 지 두세 시간 만에 사라져버렸다.
도로 위 반칙운전은 명절뿐 아니라 평소 출퇴근길에도 자주 목격하는 일인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반칙운전자에게 너그럽게 차로를 내주지 못하는 것이 과연 속 좁은 것일까. 룰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약삭빠르게 행동하면 이득을 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도로 위에서 새삼 재확인하는 데서 오는 짜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한국식 운전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룰은 무시해도 좋다’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성공지향주의가 만들어 낸 습관일지 모른다.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비정상적 문화 말이다. 이웃 나라보다 근대화가 늦었던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해왔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더디게 가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도로 위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공지향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반칙운전자를 보고 지내야 할까.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그렇다면 임시변통으로라도 반칙운전자에게 벌금 대신 시간을 물리는 방법을 도입해 보면 어떨까. 빨리 가려고 신호를 위반하면 10분, 병목구간에서 끼어들기를 하는 얌체들에겐 20분씩 운전을 하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이다.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에게 1만 원의 가치가 같지 않듯 위반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과되는 벌금은 정의롭지 못하다. ‘시간이 돈인 사람’ ‘돈이 많아 딱지 몇 개쯤은 끄떡없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잃는 게 더 무서운 벌이다. 걸리면 돈 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도로 옆에 세워두면 계도효과도 훨씬 클 것이다. 웬만한 타인의 시선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칙운전을 해대는 ‘멘탈 甲(갑)’도 남들 보는 앞에서 벌을 서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추석 귀경길 막히는 도로에서 신나는 공상을 하는 사이 졸음도 날아갔고 막힌 길도 어느새 뻥 뚫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