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부형권]우버 택시와 혁신 DNA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부형권 뉴욕 특파원
부형권 뉴욕 특파원
미국에서 지내면서 돌아보게 되는 단어가 혁신(innovation)이다. ‘그 의미를 협소하게 해석했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뉴욕 금융가 뱅커들로부터 “요즘 가장 혁신적인 은행은 주7일 영업하는 TD뱅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혼란스러웠다. 주5일 근무(영업)라는 대세를 거역하는 것이 혁신적이라니?

뱅커들은 “토요일 일요일도 일하는 은행을 자영업자 같은 소비자들이 원했는데 다른 은행들은 엄두를 못 냈던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TD뱅크는 ‘가장 먼저 열고 가장 늦게 닫고 일주일 내내 영업하는, 그래서 가장 고객 편의적인 은행’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는다. ‘일요일 공휴일에 은행도 쉬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맨해튼 최고층 아파트에 사는 부자들 중엔 자신의 최고급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에 두지 않고 창 너머로 흐뭇하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나 보다. 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하늘 차고(Sky Garage) 아파트’까지 생겼다. 개인용 차량 엘리베이터가 수십 층 높이의 아파트 거실 옆 차고로 올라가는 구조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는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미국, 특히 뉴욕에선 혁신의 정점에 서있는 느낌이다. 차량을 가진 개인(우버 운전사)과 차량이 필요한 개인(우버 고객)을 스마트폰 앱 하나로 연결한 혁신적 모델이 미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 경제의 우버화(Uberization)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수요 공급의 법칙, 시장(가격)의 기능이 가장 충실히 구현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비 오는 금요일 밤처럼 택시가 필요한 사람이 급증하면 우버 요금이 오르고 그러면 우버 운전사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그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설명이다.

좌파 성향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택시업계의 불만과 도심 교통체증 심화를 이유로 ‘우버 차량의 증가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가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물러섰다. 규제 방침 발표 며칠 만에 받은 반대 의견 e메일만 1만7000통이 넘었고 뉴욕 시 내부에서조차 우버가 창출하는 일자리, 경제효과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반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한 주간지는 “택시업계 간부들이 모여 우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마저 나왔다”고 전했다. 이미 뉴욕 시의 우버 택시 규모(약 2만600대)가 옐로캡(뉴욕 택시·약 1만3600대)을 추월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우버 운전사를 독립적인 사업자(우버의 계약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피고용인(직원)으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법정 소송 등이 진행 중이다. 옐로캡 운전사들의 항의 집회와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창출하는 혁신 DNA의 불꽃을 살려 나가려는 다양한 노력도 함께 진행된다는 점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느낌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등 학계에서는 “우버 같은 21세기형 혁신 모델을 20세기식 구분법으로 규제하려 하지 말고 그에 맞는 새로운 틀(규정)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이 살길은 성장도, 분배도 아닌 (우버 같은) 혁신”이라고 말하는 정치권 인사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우버의 폐해를 걱정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다른 한편에서 그 혁신 DNA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형권 뉴욕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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