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恨을 일본어로 옮길 때 빚어지는 오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일본어를 배운 인연으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일본인 어학당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부탁을 받았다. 기자가 일본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주간동아에 연재한 기사를 일본에 사는 외국인을 위한 수업 자료로 쓸 테니 번역자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알던 한국인 번역자와 연결해줬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번역자가 강제징용 관련 내용을 번역하면서 ‘한(恨)’을 ‘원한(恨み·우라미)’으로 번역한 것이 발단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번역하면 ‘한’이 매우 개인적이고 낮은 레벨의 감정이 된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무념(無念)의 마음’이라는 단어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무념’은 불교에서 유래한 단어로, 일본어에서는 ‘정념을 잃고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유감인 상황’ 정도의 뜻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번역자가 발끈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면 역사 왜곡이라고 본다. 강제로 끌려온 수십만 명의 원한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 것은 일본인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양측의 감정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필자가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한’을 어떻게 번역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적당한 단어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애써 내놓은 해법들은 제각각이었다. “번역자가 고른 단어가 그나마 비슷한 것 같다” “어학당 선생님의 제안대로 고쳐야 한다” “한자로 쓰고 각주를 달아 설명하면 어떻겠느냐”….

어학당 선생님과 번역자, 필자가 20차례 이상 e메일을 교환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분하고 슬픈 마음’으로 번역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하지만 못내 찜찜한 마음이 남았다.

‘한’은 한국인 특유의 감정이어서 외국어로 옮기기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다. 일본어 번역자들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고민하다 이번처럼 ‘우라미(원한)’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두 단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에는 ‘복수’의 감정이 그다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우라미’에는 강하게 내포돼 있다. 결국 ‘한’을 ‘우라미’로 번역하면 일본인들에게 ‘언젠가 한국이 복수를 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며 오해가 쌓이게 된다.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편리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은 과거사의 원한 때문에 언젠가 일본에 복수할지 모른다, 그러니 대비해야 한다 등으로 반응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 ‘우라미’는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감정이다.

지난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개각에서 새로 임명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과 공존하려는 의도가 읽히지 않았다. 야스쿠니(靖國)신사 단골 참배 의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부정에 앞장선 의원,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참석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의원…. 아베 총리의 ‘마이 웨이’에 가속도를 붙일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지한파인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우라미’가 상대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라면 ‘한’은 자신 안에서 자아내는 것”이라며 “‘우라미’는 복수에 의해 해소되지만 ‘한’은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면서 해소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한’을 얘기했지만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일본 우익 세력은 ‘위안부 역사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응어리’는 이제 식민지의 아픔을 상징하는 것이 됐다. 일본 정부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을 계속 외면하다 ‘한’이 정말 ‘원한’으로 바뀌는 날이 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드는 대목이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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