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수능이후 ‘高3 교실 파행’ 언제까지 두고만 볼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3시 00분


전상훈 광주첨단고등학교장
전상훈 광주첨단고등학교장
걱정이다. 한 달여 남은 대학수학능력시험도 걱정이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수능 이후다. 어떤 이는,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 많긴 해도 대학 진학이 고교 교육의 현실적 목표인 이상 내신관리 잘 해주고 수능만 잘 치르게 하면 되지, 그 이후가 무슨 걱정이냐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과 학교의 존재이유,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일선 고교의 학교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제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 부끄럽다. 해마다 수능 이후에 빚어지는 교육파행, 즉 시험이 끝났으니 교사는 더이상 가르쳐줄 게 없고 학생은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제 간의 암묵적 카르텔 속에서 교실이 일종의 ‘교육 진공상태’에 빠져드는 현상은, 오직 입시에 매몰된 채 정녕 학교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성찰조차 존재하지 않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능이 끝나면 바로 대학별로 치러지는 수시전형 면접에 참여하거나 정시에 치러야 하는 논술이나 실기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의 학원가로 몰려가는 학생들로 교실의 빈자리는 갈수록 늘어난다. 들고 나는 학생들로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고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학교 울타리 안에 잡아두는 일은 고삐 풀린 망아지를 붙잡아두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하다.

물론 대다수 학교가 제 나름의 대책을 세워 창의적 체험활동, 진로교육, 논술지도, 실기지도, 독서지도, 외부강사 초청특강, 소규모 체육대회 같은 특별교육으로 공백을 메워보려고 애쓰고는 있다. 하지만 입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에 취한 고교 3학년생을 교실에 붙잡아 둘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재가 마땅치 않다. 학생들은 영상물 시청, 잡담, 수면 등으로 시간을 때우고 그마저도 인내심이 금세 한계에 이른다. 그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교사의 심정은 수확이 끝난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허허롭고 막막할 수밖에 없다.

대입 내신 산출에 반영되지 않는 3학년 2학기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학기가 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이처럼 수능이 끝나고 겨울방학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반 남짓한 시간이 사실상 교육 불능, 교육 포기의 시간이 되고 마는 구조적 악순환을 방치하고 학교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일은 연목구어와 같다.

교육당국은 이런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는 현행 수능 체제에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능 시기를 12월 중순으로 한 달 정도만 더 늦추고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는 수시 편향적인 모집인원 비율을 적정하게 조정하는 문제도 검토해볼 만하다. 고교 교육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강구해 달라.

전상훈 광주첨단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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