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는 ‘국정교과서 블랙홀’ 빠져나올 복안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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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어제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 앞에 모든 국정 현안을 삼키는 블랙홀이 놓여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다. 박 대통령은 13일 출국 3시간 전 긴급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해 국정화 의지를 천명하며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보다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정치권에 당부했으나 논란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갤럽이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정화 찬성과 반대가 각각 42%로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국론 분열을 드러냈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적 평가(44%)가 긍정적 평가(43%)보다 많은 이유로 첫손에 꼽힌 것도 교과서 국정화였다.

여권은 심각한 좌편향에 왜곡·오류가 제대로 시정되지 않는 검인정 교과서를 정상화하기 위해 국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꼭 이겨야 할 역사전쟁”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전쟁을 지휘해야 할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어제 TV에 출연해 “국정(國定)을 영원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바람직한 건 자유발행제”라고 말했다. 주무 장관부터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판에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화 저지 반대를 ‘원내외 병행 투쟁’ 할 뜻을 밝혔다. 당장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과 각종 법률안의 심의 의결이 부실화되거나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개혁 관련 입법은 물론 장기간 국회에 묶여 있는 경제 활성화 및 민생 관련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이 모두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 야당이 내년 예산안 심의나 주요 법안 처리를 연계해 발목을 잡는 자세는 비판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 앞에서 ‘간접화법’으로 주문한 대로 정치권이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교과서 국정화를 사실상 주도한 박 대통령이 왜 그럴수밖에 없는지를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힐 수밖에 없다. ‘교과서 블랙홀’을 피해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등 참모 몇 명 바꾼다고 해서 국정 운영이 원활해질지도 의문이다. 야권이 비판하고 국민이 걱정하는 문제에 박 대통령이 정면으로 나서 “독재나 친일 미화 교과서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 전에 기존의 좌편향 교과서에 대한 검정을 강화해 바로잡는 작업부터 착수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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