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덕술이 김원봉 체포했지만 “뺨 때리고 고문했다”는 얘기
역사적 근거 찾을 수 없어
확인 않고 내지르는 자습서 교과서보다 한술 더 떠
박근혜 국정화 옳지 않지만 문재인도 건설적 대안 내놓아야
고등학생 딸이 보던 한 베스트셀러 한국사 자습서를 훑어보다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김원봉이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취조를 당해요. 누구한테요? 고문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노덕술한테 당합니다. 그에게 뺨을 얻어맞고 엄청난 모욕을 당해요… 자신을 고문하던 사람이 일제강점기 동안 자신을 잡으려고 그토록 발광했던 고등계 형사 노덕술입니다… 김원봉은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그 뒤 김원봉은 북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노덕술이 고문 경찰관인 것은 분명하지만 설마 김원봉 같은 당대의 정치 거물을 고문까지 했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근거를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김원봉 연구서는 염인호 서울시립대 교수의 ‘김원봉 연구’(1993년)가 가장 상세하다. 어디에도 김원봉이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고문을 당했다는 말은 없다. 다만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의 회고록 중 “김원봉이 노덕술로부터 모욕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정정화의 회고록은 부정확한 데가 많은 데다 이 말은 전해 들었다는 것이어서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그것을 믿는다 하더라도 모욕적인 처우가 고문이었다면 고문이라고 하지 모욕적인 처우라고 에둘러 말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염 교수는 또 한상도 건국대 교수의 ‘김원봉의 생애와 항일 역정’(1990년)을 인용해 “김원봉이 묶이어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의 사무실로 끌려가자 장택상은 노덕술에게 화를 내며 ‘모셔 오랬지, 누가 이래라 했느냐’고 짐짓 황망해하면서 묶인 것을 풀어줬다”고 쓰고 있다. 이 말은 본래 1984년 당시 길진현 중앙일보 기자가 쓴 ‘역사에 다시 묻는다’에 김원봉의 의열단 동지였던 전 광복회장 유석현의 증언으로 나와 있던 것이다. 이 증언은 증언 날짜나 장소가 나와 있지 않아 사료적 가치가 의문시된다. 그래서 염 교수는 길 기자의 1차 자료를 인용하지 않고 교묘히 한 교수의 2차 자료를 인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증언을 좀 더 보면 “김원봉은 장택상과 노덕술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고 나(유석현)에게 와서 사흘을 꼬박 울었다”고 돼 있다. 증언을 사실로 믿는다 해도 김원봉이 당한 수모라는 것이 기껏해야 수갑에 채워져 끌려갔다는 정도다. 김원봉이 뺨을 맞거나 고문당했다면 그런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없다. 증언에서 알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은 김원봉이 수갑에 채워져 끌려갔으며 당대의 정치 거물이었던 그가 그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이 증언은 김삼웅 등 언론인 출신 아마추어 역사가들에 의해 김원봉 고문설로 확대 재생산되는 데 이용됐다.
김원봉은 당시(1947년) 김구와 결별하고 좌익연합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에 들어가 있었다. 그 전해 정판사 화폐 위조 사건 이후 공산당의 박헌영이 미군정의 체포를 피해 사라진 자리를 김원봉이 메우고 있었다. 김원봉은 대구 폭동의 민전조사단 단장 자격으로 경상도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원봉은 미군정의 요(要)주의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김원봉은 일시 체포됐다 풀려난 후에도 1년 가까이 남쪽에 남아 있다가 북쪽으로 갔다. 그의 월북은 체포보다는 여운형의 암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
광복이 됐는데도 친일파 경찰이 왕년의 항일 운동가를 고문한다는 만평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노덕술의 김원봉 고문설보다 더 극적인 사례는 찾기 어렵다. 노덕술은 고문 경찰관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를 악마화해도 견제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런 데서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좌편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사 교과서도 문제지만 자습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교과서와 자습서로 공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분명 옳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도 국정화는 안 된다고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사에서 현대사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은 노무현 정권 때다. 문 대표가 현대사 분야를 과감히 축소하는 대신 검정제를 유지하자는 식의 건설적인 제안을 한다면 국정화 고시 전에라도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막을 합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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