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이 다음 주로 다가왔지만 구체적인 일정을 놓고 양국의 외교적 신경전이 노출되고 있다. 청와대는 그제 “정상회담을 11월 2일 개최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고 밝혔으나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그런 (제안)보도를 모른다”며 딴전을 부렸다. 청와대가 관례를 깨고 정상회담 일정을 먼저 밝힌 것도, 일본 정부가 한일 언론의 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묵살한 것도 정상이 아니다.
3년여 만에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와 맞물려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은 그동안 냉랭했던 한일 관계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한국은 이 자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미래지향적 태도’를 표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가 관방장관은 그제 “우리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본이 뒤늦게 정상회담 전후로 오찬이나 만찬을 요구했으나 청와대가 확답을 하지 않는 줄다리기까지 벌어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 말고도 한일 양국 간에 논의하고 협력해야 할 현안들이 쌓여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역내 모든 국가들의 강력하고 건설적인 관계가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다”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한 한미일 3각 공조 회복을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서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3년 6개월 만의 정상회담이 한일 화해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일 정상이 오찬이나 만찬을 함께 들며 환담을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양국의 냉랭한 분위기가 개선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어제 미국이 처음 남중국해 중국 인공섬의 12해리(약 22km) 이내에 구축함을 파견해 미중 간의 갈등이 한중일 정상회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국은 즉각 미국에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일본도 중국을 겨냥해 “미국과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여기에 중국은 한중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어제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언명해 한국은 한미일 3각 공조와 역사를 둘러싼 한중 공조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지 모를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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