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맞으며/김덕중]북한 김용만 교수에게 부치는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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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
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
용만 막내 삼촌! 저 삼촌의 장조카 덕중입니다. 저보다 열세 살 더 자셨으니 내후년이면 미수(米壽)를 맞으시겠군요. 저도 이제 백발, 일흔셋 나이를 속절없이 먹었습니다. 참, 지금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10년 전 금강산에서 용갑 첫째 삼촌과 극적으로 만나시기 직전에 마침 TV가 대기 중인 용만 삼촌의 얼굴을 크게 보여줬습니다. “아, 막내 삼촌이다.” 제가 탄성을 올렸답니다. 본디 미남이셨는데 많이 노쇠하신 듯 보여 가슴이 더 시렸지요. 제가 아홉 살 때 삼촌이 홀연히 종적을 감춰 제 아버지가 탄식하셨던 게 엊그제 같군요. 제가 나이 더 먹어 안 일이지만 의용군에 자원입대하셨다지요?

이제 제 아버지도, 또 어머니도, 용갑 큰 삼촌도 다들 세상을 뜨셨습니다. 이제 용만 삼촌과 제가 한반도에 충남 서산 태안의 광산 김씨 문중 대표로 남은 셈입니다.

6·25전쟁에서 용케 살아남으신 뒤 그곳 북한에서 김일성대학 다음 가는 K대 교수를 지내셨다지요? 우리 문중에서 교수를 셋이나 냈으니 지하의 할아버지가 기뻐하실 일입니다. 아버지가 제 외가가 있는 전북에서 학장·대학원장을 지내셨고 저도 언론계 퇴직 뒤 서울 어느 사립대 객원교수로 다년간 강의했습니다.

이제 김용만 선배 교수께 묻습니다. 대체 왜 우리가 그토록 처절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러야 했는지요? 또 지금 왜 막내 삼촌과 제가 휴전선인지 뭔지 하는 괴물 장벽에 막혀 상면도 못해야 합니까? 지금 저의 간절한 소망은 막내 삼촌을 뵙고 큰절 올린 뒤 실컷 울어보는 일입니다. 얼마 전 금강산에서 벌어졌던 장면들입니다.

삼촌! 이제 할아버지도 그만 미워하십시오. 돌아가시기 전 큰 화상을 입어 고통이 막심했는데 문병 온 맏며느리, 곧 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내가 네 시모 생전에 잘못한 게 많다.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저는 삼촌이 젊은 소실에게 마음 빼앗긴 지주 아버지를 증오한 끝에 공산주의로 돌아선 건 아닌지 가끔 상상하곤 합니다. 그래서 더 연민의 정이 솟아오릅니다. 삼촌! 이제 남북의 모든 이들이 진정 화해의 길로 들어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둘이 서둘러 만나야 합니다. 금강산에 시급히 상설 면회소를 두도록 삼촌은 김정은 제1비서에게, 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원할 걸 제의합니다.

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
#북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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