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김치 팔게 됐다고 좋아할 때인가.”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리커창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쌀과 삼계탕 김치까지 중국에 수출할 수 있게 돼 농민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자 베이징의 교민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가 ‘절인 채소류에서는 대장균군이 100g당 30마리가 넘게 나오면 안 된다’는 수입 위생기준을 개정해 빠르면 연내에 한국산 김치가 중국에 다시 수출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싶다. 중국에서는 현재 연간 김치 생산량 30만 t 중 내수는 6만 t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이 작다. 또 냉장 유통 시스템이 열악한 데다 크고 작은 마트에 들어갈 때 입점비 판촉비 등 부대비용도 많이 든다.
게다가 한국산 김치는 물류비 등이 보태져 중국산 김치보다 2, 3배는 가격이 비쌀 것으로 보인다. 김치 수입 규제가 없던 2010년만 해도 한 해 대중(對中) 수출량은 38만 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모든 상황은 유동적인지라 이번 일을 계기로 김치 수출이 얼마나 더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2014년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 때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치 수출이 큰 소득으로 꼽히는 모양새는 정작 심각한 문제에는 소홀하고 효과가 별로 없는 것만 부각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A 씨처럼 자영업을 하는 교민이나 중국 내 크고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은 “한중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다고들 하지만 사실 한국 기업들은 죽을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시장에서 한국 대표상품들의 매출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샤오미에 1위를 내준 뒤 올해 4, 5위로까지 밀려난 상태이다. 현대자동차도 올해 1∼9월 판매 순위가 5위로 내려앉았는데 특히 창안자동차라는 중국 토종 업체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베이징 한인촌인 왕징에서 한의원을 하는 한 한의사는 “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이 최고의 관계라고 하지만 교민들이 줄다 보니 고객이 2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왕징의 길거리나 아파트에서도 “한국말이 줄었다”는 말도 들린다. 본보 도쿄 특파원들의 보도에 따르면 한일관계 악화에 따라 일본 도쿄 중심가의 한류 거리였던 오쿠보가 차이나타운으로 변하고 있다지만 한중 관계는 역대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 경제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베이징 주재 한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은 “지방에서 열린 한중일 산업박람회를 갔더니 일본은 첨단 로봇을 전시하는데 한국은 전통 공예품을 내놔 답답했다. 10년 전 흑자 내던 기업이나 산업은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국은 과연 10년 뒤 중국에 뭘 팔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할 때”라고 했다.
김치 수출도 중요하지만 당장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을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중국 내 한국인 유학생은 4년제 대학과 장단기 어학연수생을 합쳐 6만여 명에 이르지만 ‘졸업 후 2년 동안 현업 유경험자’라는 중국 정부 규정에 따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졸업하는 중국인 유학생에게는 이런 제한이 없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한국은 중국에 김치를 수출하는 대신 중국이 수입하는 자동차 전자 화학 등 주력 공산품은 중국이 주장한 높은 관세를 허용했다. 이러다 보니 현대차가 중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의 관세 소비세 증치세 등 세금은 최고 80%가량에 이른다. 대중 무역에 심각한 도전과 시련이 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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