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JFK공항에 착륙하는 한밤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맨해튼은 불야성이었다. 여전히 세계의 자본이 몰려드는 미국 경제의 중심임을 과시라도 하는 듯했다.
맨해튼의 거리는 2001년 9·11테러 악몽과 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듯했다. 사람들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 곳곳에 초대형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새로 짓고 있는 호화로운 빌딩도 많았다. 뉴욕 일대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는 샘리(44) 씨는 “맨해튼의 토지와 건물 가격은 2008년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다. 지금은 부동산 투자 열기가 인근의 뉴저지와 필라델피아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맨해튼의 지기(地氣)가 다시 한 번 용틀임을 하는 걸까. 원래 맨해튼은 ‘재물 명당’의 교과서라 할 만큼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땅의 기운을 동물이나 사람의 생김새에 비유해 설명하는 물형론(物形論)으로 보면, 맨해튼은 영락없는 남성 생식기 모양이다. 생식기는 생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쪽 뉴욕 만의 바닷가까지 불끈 뻗어 내린 ‘양물’의 기운을 양옆의 이스트 강과 허드슨 강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호위하고 있다. 두 강은 육지에서 나오는 명당 기운을 가두는 그릇이면서, 그 기운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그래서 공중에서 기운이 뻗어 내리는 천기형(天氣形) 명당이나 땅 밑에서 기운이 용솟음치는 지기형(地氣形) 명당은 물이 둥그렇게 감싸주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부자가 되려면 물(양수·陽水)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즉 득수(得水)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맨해튼은 바로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맨해튼 기운이 응집된 곳은 생식기 끝 부분에 해당하는 월스트리트 일대다. 묘하게도 바다 한가운데 리버티 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과 짝을 이루고 있다. 남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을 만나야 복을 얻는다는 믿음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 놓은 남근석과 여근석 세트에 비유할 만하다.
월스트리트를 직접 걸어 보니 명당 기운이 몰려 있는 혈(穴)들이 곳곳에 포도송이처럼 맺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혈이 있는 곳은 세계 최대의 주식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뉴욕연방준비은행. 두 곳은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동질의 혈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식시장의 활황을 기원하는 월스트리트의 명물 황소 동상(Charging Bull) 역시 명당 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 황소를 뜻하는 영어 ‘bull’과 남성의 고환을 가리키는 ‘ball(s)’은 모두 라틴어 ballere(볼록한 물체)에서 유래했다. 비록 후세에 만들어진 우연이긴 하지만 맨해튼이 생식기 명당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황소상의 고환을 만지면 돈이 붙는다는 속설 때문인지 해당 부위는 반질반질할 정도로 사람들의 손을 탔다.
그런데 이런 터에서 왜 9·11테러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까. 월스트리트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참사의 현장은 현재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이름으로 정사각형의 물웅덩이를 만들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방 벽면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그 아래 깊숙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주위를 살펴봤다.
짐작한 대로 이 일대는 거대한 암반 수맥(음수·陰水)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큰 명당 터라 하더라도 수맥 같은 ‘암초’는 군데군데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하 깊숙한 곳에서 방사되는 암반 수맥파는 웬만해서는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풍수학에는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이란 말이 있다. 암반 수맥지대에서 퍼져 나오는 살기는 또 다른 살기와 동조한다는 의미다. 이때는 피하는 게 최선이다.
미국인들은 9·11테러로 잃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인지 참사 현장 부근에 또 다른 이름의 세계무역센터를 여러 채 짓고 있었다. 바로 인근에 있는 훌륭한 지기 명당을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금리 인상을 검토할 정도로 회복 단계에 접어든 미국 경제가 앞으로도 계속 순항할지 걱정된다. 터로 세상을 바라보는 풍수학인의 염려가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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