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차마고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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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노향림(1942∼)

목이 말라야 닿을 수 있는 길
차마 갈 수 없어도
참아 갈 수 있는 길
그런 하늘 길
생각하며 연필화의
흐릿한 연필 끝을
따라가본 것뿐인데
등 뒤가 까마득한 차마고도,
차 대신 소금 한 줌 얻으려고
연필화 끝의 희미한
멀고 먼 나라
비단길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이집트의 테우스는 문자를 만들어 타무스 왕에게 자랑했다. 이것이 사람들의 기억과 지혜를 증가시켜 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타무스는 문자의 순기능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문자로 인해 기억과 지혜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은 테우스의 주장이 맞을 때가 있다. 어떤 문자는 생각의 감옥이 아니라 생각의 문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일상 중에 우연히 눈에 뜨인 어떤 단어는 나를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어떤 단어는 멀리 나가 있던 생각들을 데리고 돌아오기도 한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바로 그런 문자 중의 하나이다.

차마고도라고 써놓고 이것을 곰곰이 들여다보거나 손으로 살살 쓰다듬다 보면 말의 사이사이에 묵은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 먼지 속에는 마방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순한 말이 보이고, 말에 싣는 교역품이 보인다. 터덜터덜 오르는 위험하고 긴 길이 보이고 그 길 위에 머무는 찬 공기와 거센 바람과 자갈들이 보인다. 천년 전이 보이고 더 천년 전이 보인다. 이렇게 차마고도라는 단어를 건드리면 마치 잠자는 모래폭풍을 불러온 것처럼 많은 것들이 우우 하고 몰려온다. 아주 거대하고 위대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 많은 불러옴이 한 시인에게 가서는 저렇게 시가 되기도 한다. 시인도 차마고도라는 말을 만져보고 굴려보고 여러 번 불러봤나 보다. 그 결과 시인은 ‘차와 말의 옛길’을 “차마” 갈 수 없는 길, 그러나 “참아” 갈 수 있는 길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었다. 말은 참 신기하기도 하지. 여러 번 바꿔 부른 끝에 차마고도는 어느덧 시인의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 그를 까마득히 먼 곳으로 안내한다. “멀고 먼 나라, 비단길 너머”라고 말하는 순간 시인은 여기 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만 리를 날아 그 고도 위에 서 있다. 이 마법과 같은 순간은 곧 먼지처럼 사라지겠지만, 아주 거대하고 위대한 찰나임에는 틀림없다.

나민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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