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른바 ‘문민정부 소통령’ 김현철 파문의 진원지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G남성클리닉(비뇨기과) 원장 박경식 씨(63·당시 45세). 김 씨가 박 씨 병원에서 모처에 걸었던 전화통화의 민감한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건은 촉발됐다. 이후 박 씨가 “현철 씨에게 이런 의혹도 있다”고 한마디 할 때마다 신문 1면 톱기사가 됐다.
강남 서초 송파 강동 지역을 담당하는 주니어 사건기자(강남경찰서 출입)였던 기자에게 ‘박 씨를 전담 마크하라’는 시경캡(사건팀장)의 특명이 떨어졌다. 한 달 넘게 기자실 대신 박 씨 병원으로 출퇴근했다. 점심때가 되면 배달된 음식을 같이 먹고, 담소를 나눴다. 특별히 뭘 취재한다기보다 그냥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 밀물처럼 그를 찾던 기자들이 하나둘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간 뒤에도 난 계속 병원에 있었다. 그해 4월 21일 그가 국회 ‘김현철 청문회’ 증인으로 TV 앞에 설 때까지 그의 복잡 미묘한 심정을 바로 옆에서 살피고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정치권, 특히 여권에선 그를 ‘이상한 사람’이나 배신자 취급을 했다. 그러나 거리 서민들은 살아 있는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택시 운전사도, 식당 아줌마도 “큰일 하고 계신다”며 요금과 밥값을 안 받을 정도였다. 박 씨가 이상한 건지,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여권 인사들이 이상한 건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기자실에만 앉아 있었으면 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 공부였다.
요즘 뉴욕에서 고 천경자 화백의 큰딸 이혜선 씨(70·섬유 디자이너)를 여러 차례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18년 전 했던 ‘사람 공부’를 복습하고 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천 화백을 혼자 간병해온 이 씨는 일부 미술계나 언론에서 ‘이상한 사람’처럼 표현되곤 했다. 천 화백 생존 여부 확인 요청을 완강히 거부하니 이상하고, 최근 사망이 확인된 뒤에는 왜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느냐며 미스터리라고 한다. 이 씨 여동생마저 기자회견에서 “언니는 이해할 수 없는 인격과 행동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이 씨와 마주 앉아 몇 시간 얘기를 듣다 보니 이상하고 궁금한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 외할머니도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 계셔서 어머니가 대소변 받아내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런 일을 12년간 하신 겁니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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