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기획재정부에서 낸 ‘2015년 3분기 가계동향’ 보도자료 중 ‘평균소비성향(가처분소득 중 실제 지출액의 비율)이 2003년 이후 최저’라는 문구가 탐탁지 않았다. 그는 ‘소득양극화가 해소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두고 다시 홍보하라고 기재부에 지시했다. 일주일 전 터진 프랑스 파리 테러로 글로벌 경기 위축 우려가 공포로 확산되던 시기, 안 수석은 무의미한 정치 메시지에 매달려 한나절을 다 보냈다. 그때 그는 이미 경제수석이 아니라 총선 참모였다.
정치에 ‘올인’한 경제수석
안 수석은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함께 경제 분야 컨트롤타워다. 경제팀 수장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긴 만큼 위기 때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뭐가 더 중요한지 구분하지 않고 구호만 외친다.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야당이 법 처리를 거부해 경제 활력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작 안 수석이 낭비한 골든타임도 적지 않다. 지난달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자화자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반박했고 이때부터 정부의 가욋일이 본업을 넘어섰다. 느닷없이 경제민주화 주무 부처가 된 공정거래위원회는 보름 넘게 민주화 홍보에 매달리고 있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덮어버리는 왜곡이 지난해 1월 연말정산 파동, 11월 평균소비성향 사태에 이어 올해 초 경제민주화 논쟁으로 이어지는 현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애초 관료사회가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을 경제수석으로 앉힌 것 자체가 실책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조세재정연구원 출신인 안 수석은 이명박 정부 때 기재부 용역과제를 많이 수주했다. 기재부 내부에는 역전된 갑을관계에 저항하는 공기가 흐르고 있다. 공무원사회의 구태의연한 태도가 근본 문제지만 정책이 중요한 순간마다 삐걱거리는 현실적인 이유다.
안 수석은 입법 미비로 정부가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한다. 반 정도만 진실이다. 서비스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4법은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핵심 수단이지만 그 성과는 현 정부 임기 내 나타나지 않는다. ‘임기 내 성장률 3%도 고용률 70%도 달성할 수 없다. 다만 미래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이 솔직하다. 그게 소통이다.
삼성그룹은 이미 바이오, 금융,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라는 3가지 분야로 가고 있다. 두산은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다.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손떼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일자리를 늘리는 게 정부가 당장 할 일이다.
청와대 ‘순장조’에서 떠나라
최근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유학생들이 국내에서 배울 수 있게 교육을 개혁하라”고 했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상황 판단이 빠른 국가는 유학생을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국가는 유학생을 막는다”고 했다. ‘두뇌 확보가 미래 경쟁력’이라는 이 엄청난 메시지가 한국에서는 정치 구호에 묻혔다.
위기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는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티 나지 않는 일을 안 수석이 할 수 있을까. 그는 박근혜 정부의 ‘순장(殉葬)조’다. 정권의 공과를 박 대통령과 나눌 공동운명체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설익은 업적 찬양에 모든 것을 거는 정치인을 2년 더 경제수석으로 두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큰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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