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공공 앱의 표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리던 2013년 4월 ‘마스크 챗(Mask Chat)’이라는 익명 메신저가 새로 나왔다. 정보기술업체 레드퀸이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든 게 특징이다. 제보 사실이 드러날까 봐 침묵하던 학생들이 이 메신저를 통해 입을 열었다. 시험적으로 사용한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학교와 학부모로부터 사용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고 레드퀸은 사업 성공의 꿈에 부풀었다.

▷‘복면 수다’의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서울경찰청이 학교폭력을 상담하는 모바일 메신저 ‘117챗’을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익명으로 쉽게 접근해 진솔한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레드퀸은 117챗 때문에 서울을 뺀 나머지 지역의 지방경찰청이나 경찰서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했다. 사기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더치트’(thecheat.co.kr)도 경찰청이 유사한 기능의 ‘넷두루미(사이버캅)’을 내놓았고 초중고교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아이엠스쿨’ 앱은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쑥’ 앱으로 따라왔다.

▷더치트 대표는 한 대형 통신사와 작년 12월 제휴해 서비스를 시작했고 2개 시중은행과는 개발 작업을 완료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당장은 사업 확장의 기대보다는 생존의 위협을 더 느낀다고 하소연한다. 더치트 측에 사기 용의자 자료를 달라고 하던 경찰청 담당자는 사이버캅 서비스를 시작할 때까지 저작권자인 더치트 대표에게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고 한다.

▷해당 공공기관은 부인하지만 신생 기업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은 표절과 다름없다. 민간의 사업을 지원해야 할 공공기관이 벼룩의 간을 빼먹은 셈이다. ‘군관민(軍官民)’이라는 관용어가 ‘민관군’으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여전히 관존민비(官尊民卑) 개념이 공무원들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950개 공공 앱을 조사해 민간 앱과 겹치거나 유사하면 정리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제대로 시행할지 지켜보겠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더치트#마스크 챗#복면 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