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요즘 ‘잘하라고 하지 말고, 잘하고 있다고 말하라’는 요지의 광고가 자주 나오더군요. 저는 전반부는 동의하지만, 후반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잘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어올 때 ‘매우’ 지지하는 태도로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혹은 상사가 콤플렉스 덩어리 사이코가 아닌 이상, 잘 못하고 있으니까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잘하라고 할 것이고, 잘하고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잘하고 있다고 칭찬할 것이니까요.
빌리 조엘(Billy Joel)의 부모는 조엘이 여덟 살 때 이혼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빈(비엔나·Vienna)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죠. 조엘은 20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갔답니다. 아버지와 처음으로 친밀해졌고, 함께 비엔나 거리를 산책했답니다. 걷다가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거리를 청소하는 것을 보았죠. 조엘은 그렇게 늙은 노인이 일을 해야 하는 것에 안타까워했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히려 그 노파가 훌륭하다고 했답니다. 늙었어도 자신을 책임지고, 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면서요.
조엘은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답니다. 나이 드는 것을 무용지물, 의존적인 존재가 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전에 무엇인가 이루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자긍심을 지킬 수 있구나’, ‘비엔나 사람들처럼 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마음이 놓이더랍니다. 아마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이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제발 천천히 좀 가, 이 정신 나간 녀석아. … 뭐가 그렇게 급한데? 열정이나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허락돼. 하지만 만족은 바보들에게나 허락돼. 꿈을 꿔. 하지만 꿈이 모두 이뤄질 것이란 꿈에서는 깨.’
이 노래는 조바심에 좌충우돌하던 저에게 위로가 되는 조언이었습니다. 삶은 젊음 이후에도 지속되니까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요. 아마도 이 노랫말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되찾게 된, 현명한 아버지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Vienna’는 결국 아버지인 것이죠.
우린 우리를 위로해주고 타일러 줄 부모님, 선생님, 성직자 등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제가 어렸을 때에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잔뜩 겁에 질려 있었으니까요. 또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잔뜩 화가 나 있었으니까요.
결국 우린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에 들어섰을 때에야, 그 과제를 수행하고 싶거나 해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되어서야, 도움이 되는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도움은커녕, 그저 소음에 불과할 뿐이죠.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조언도 대충 그 수준입니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때, 타인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와 윤리는 그런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누구도 헛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인생에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지 않기를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