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온다. 나에게는 비수기가 다가온다는 뜻이며 ‘어마무시’하게 더워질 것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더워진다는 것은 전기요금이 곱빼기로 나온다는 것이다. 벌이는 줄고 지출이 많아지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사람들은 여름 하면 휴가와 여행, 바다, 산, 계곡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휴가와 여행이란 단어는 마음을 참 설레게 한다. 그곳에 가기 위해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겠지.
이곳 전주에도 여러 사람이 여행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간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이곳저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지역의 특색거리도 즐겼다. 그런데 전주에 내려와 내 가게를 꾸린 뒤로는 여의치 않다. 주말과 연휴에는 장사해야 하고, 평일엔 큰아이 등교로 선뜻 여행을 떠나기 쉽지 않다.
가게엔 우리 가족이 옛날에 제주 여행을 했던 사진이 걸려 있다. 남들이 볼 때는 ‘참 여유로운 여행을 했구나. 이 사람들이 참 걱정 없이 지내는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린 그곳에 갔을 때 누구보다 힘들었고 누구보다 걱정이 많았다.
그땐 우리가 전주 남부시장에 가게를 처음 꾸렸을 때였다. 주말인데도 휑했고 우리는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에게 당시 제주 여행은 그저 즐기고 쓰러 가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 결심하는 기회를 주는 장소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행이 단지 소비만을 위한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것을 보고 스트레스를 풀면서 다시금 열심히 살 수 있는 마음을 다잡으면 좋겠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제각기 다른 사연들을 갖고 온다. 중학생 아들과 여행 와서 맥주 한 잔을 건네주는 엄마, 홀로 여행 와서 말 상대가 필요한 사람, 신랑과 자식들부터 해방된 ‘줌마 모임’, 이제 갓 성인이 된 친구들….
이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나는 이미 그 사람들을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생활이 나에겐 활력이 되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되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출퇴근으로 한두 시간을 허비하는 삶, 그런 생계형 삶이 아닌, 무언가를 알아가고 즐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됐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이곳에 있지 않고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음식점에서 거짓 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맞는다면 금전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겠지만 과연 행복할까. 내 행복의 중심이 매일 반복되는 것에 대해 보상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로서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는 것인가. 만약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주말에 이곳에 여행을 와서 이 청년들이 하는 것에 대해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김은홍
※필자(42)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북 전주로 내려가 남부시장에서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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