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첫 여성 도쿄지사 고이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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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헨진(變人·괴짜)’으로 불리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공공개혁을 내걸고 추진한 우정(郵政) 민영화 정책에 야당은 물론 일부 자민당 의원까지 반대하자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민영화에 반발해 탈당한 자민당 중진 ‘반란파’의 지역구에는 지명도가 높거나 미모가 뛰어난 각계 여성을 전략공천해 대부분 당선시키는 등 압승을 거뒀다. 수도인 도쿄로 지역구를 옮겨 승리한 고이케 유리코 의원은 고이즈미가 강행한 ‘자객 공천’의 대표적 사례였다.

▷올해 64세인 고이케는 1971년 ‘유엔 공용어에 아랍어가 추가될 것’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고 간사이가쿠인대를 중퇴한 뒤 이집트로 유학을 떠났다. 카이로대 졸업 후 귀국해 아랍어 통역을 거쳐 민영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40세에 정계에 입문한 뒤 여러 정당을 돌면서 중의원 8선, 참의원 1선 등 9선 의원의 경력을 쌓았다. 첫 여성 방위상과 자민당 총무회장이란 기록도 갖고 있다.

▷호화판 해외출장으로 중도 퇴진한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 도지사의 후임을 뽑는 그제 선거에서 고이케는 자민당의 ‘추천’을 원했지만 거부당했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비주류인 이시바 시게루 의원을 지지하면서 아베 신조 현 총리 등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고이케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각오로 도전하겠다”며 순수 무소속으로 출마해 여야 추천 후보들을 꺾고 사상 첫 여성 도쿄지사에 당선됐다.

▷일본은 여성의 정재계 고위직 진출이 어려운 나라다. 한국과 대만의 여성 대통령과 총통, 미국의 여성 대선후보에 이어 일본의 수도 수장(首長)을 여성이 차지한 것은 세계 곳곳에서 불고 있는 여풍(女風)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고이케는 이번 선거에서 마스조에가 약속한 도쿄 제2한국학교 부지 임대 계획 백지화 공약을 내걸었다. 2014년에는 옛 일본군의 위안부 연행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 재검토도 요구했다. ‘유리천장’을 뚫은 도전은 평가하지만 국수주의적 대한(對韓) 인식은 걱정스럽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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