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를 깎아 만든 것은 그 절개를 취함이요 종이를 바른 것은 그 깨끗함을 취함이다. 削以竹 取其節也 塗以紙 取其潔也 (삭이죽 취기절야 도이지 취기결야)
―김주 ‘우암유집(寓庵遺集)’ 더운 여름이다. 많은 사람이 더위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더위를 피해, 혹은 더위를 즐기려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여름이 더운 것은 여름의 잘못이 아니다. 겨울이 추운 것과 마찬가지로 천지 운행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름이 덥지 않으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고, 또 많은 기상이변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안겨 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여름의 더위에 고생하면서도 이를 탓하려 하지 않고 함께 조화를 이루려 하였는데, 부채도 이런 조화를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어 왔다. 요즘은 문명의 발달로 예전에 비해 부채의 쓰임이 많이 줄었다. 가정 및 사무실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러나 아직도 휴대와 이용의 편의성 때문에 여름이면 책상 위 또는 가방 속에 부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대나무 살에 종이를 바른 전통 접부채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손으로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면서도 ‘왜 대나무일까?’, ‘왜 종이일까?’ 하고 의문을 품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선인들은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갖추어져 있다는 사고의 발로에서 하찮은 사물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인인 김주(金澍)는 어떤 이에게 부채를 선물하면서 부채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그 부채에 적어서 주었다. 대나무 살은 절개의 뜻을 취하였고, 하얀 종이는 깨끗함의 뜻을 취하였다고 하였다.
의미의 부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로 묶인 머리 쪽은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상징한다고 하였고, 펼쳐지는 꼬리 쪽은 만물의 다름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이쯤 되면 바람을 일으켜 시원하게 해 주는 부채 본연의 성질은 오히려 부차적인 기능이 되는 듯도 하다. 펼쳐서 천지만물의 조화를 생각하고, 접어서 하나로 통하는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부채질을 하며 곧은 절개와 깨끗함을 바람결에 싣는 격이니 자못 운치가 있다.
한창 더울 때에는 이 더위가 결코 가시지 않을 것만 같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곧 가을의 서늘함이 찾아올 것이다. 얇은 여름옷을 옷장 깊숙이 넣으면 책상 위와 가방 속의 부채도 어딘가로 사라질 것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이 가을날을 맞는 부채의 신세를 안타까이 노래하였다. 사랑이 식어 버려지는 여인에 비유하기도 하였고, 신임을 잃어 멀리 내쳐지는 신하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위의 말처럼 부채에 온갖 사물의 이치가 모두 내재되어 있다면, 부채의 입장에서는 지금 쓸모가 없어 버려진들 자신이 도를 간직하고 있으니 그리 서운해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주인의 입장에서는 바람을 일으킬 필요는 없더라도 그 갖추어진 의미를 생각하며 늘 가까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김주(1512∼1563)의 본관은 안동, 호는 우암(寓庵)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 대사성, 대사헌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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