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노무현 탄핵이 ‘의회 쿠데타’였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3일 23시 01분


2004년 탄핵 유도해 재미 본 친노…대통령 끌어내려 憲政깰 참인가

12년 전 憲裁가 예견한 탄핵 사유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 담당 자격을 상실했을 때’

다음 대통령 같은꼴 안 당하려면 당당하게 ‘박근혜 탄핵’ 발의하라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11일 방송에서 근래 가장 웃기는 소리를 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과 ‘국가 사유화’를 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말하지 않는 이유가 첫째 국회에서 이뤄질 것인가, 둘째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게 옳은가, 셋째 이 복잡한 문제를 헌법재판관 9명에게 맡겨서 될 일인가 싶어서라는 거다.

 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헌법을 불신해 헌법 절차를 피하려 들다니 뚱뚱한 ‘다이어트 코치’를 만난 것 같다. 국회는 빼더라도 총리에게 문제가 있고 헌법재판소가 못 미더워 탄핵을 못 한다는 건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모독이다. 2004년 5월 14일 헌재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기각하자 “탄핵에 대한 법적 마무리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던 그가 현재의 헌재를 무시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

 그때 조국은 “탄핵안 가결 당시 반대했던 시민 중에는 절대적 의회권력에 반대한 이들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가장 격하게 반발했던 이들이 ‘노무현 탄핵은 의회 쿠데타’라며 울부짖었던 친노(친노무현)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의 탈법과 실정(失政)을 막기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에 둔 합법적 제도를 쿠데타로 몰았으니 지금 와서 ‘박근혜 탄핵’을 거론하기도 민망할 것이다.

 이제는 노무현 탄핵 과정도 차분히 복기할 필요가 있다. 2004년 3월 12일 탄핵안 통과 뒤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번지고,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압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든 탄핵이 선거에서 재미 보려는 노무현의 정치공작이었다면, 배신감 느끼지 않는가. 

 당시 의사봉을 두드렸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탄핵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유인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여야가 협상할 기회를 수없이 주었음에도 당청이 거부한 게 그 증거다. 후폭풍도 오래가지 못했다. 386 의원들의 오만과 무능이 사정없이 드러나면서 탄핵 기각 1년도 안 돼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은 완패했고 국회는 도로 여소야대가 돼버렸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은 헌재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이나 절차 등에 하자가 없다”고 결정문에 명시했다는 사실이다. 탄핵은 의회 쿠데타나 불충(不忠)이 아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감히 끌어내려?’ 같은 국민감정이 끓어오른 데는 편파적 탄핵방송과 인터넷 영향이 컸다. 

 헌재가 “노 대통령이 일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반은 아니다”라고 기각 사유를 밝히면서 ‘탄핵이 필요한 중대한 법 위반’이 뭔지 별도로 해석해 놓은 대목에선 우주의 기운까지 감지된다. 바로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때’다. 12년 뒤 박근혜 탄핵을 예견하는 문구처럼 섬뜩하지 않은가.

 탄핵 심판 대통령 측 대리인 간사였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시위에서 “대통령이 국민 요구에 답하지 않는다면 저와 우리 당은 부득이 퇴진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기억한다는 유력 대선 주자가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을 무시한 채 대통령을 끌어내렸다간,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거국내각이라는 이름은 거룩하지만 야당 성향의 총리가 외교 안보까지 대통령의 전권을 접수해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할까요, 말까요?” 북한에다 물어보는 거국내각이라면 난 반대다. 문재인이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헌정 질서에 따라 당당하게 대통령 탄핵 발의를 요청하란 말이다.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차고 넘친다. 박정희-육영수의 딸을 뽑았더니 최태민의 딸이 사실상 대통령이었다는 것만큼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일도 없다. 자신은 모든 것이 선의(善意)로되 배신만 당한다고 믿는 성정(性情)도 국정 담당할 자격으로는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1986년 마르코스, 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쫓아낸 필리핀의 ‘피플 파워’ 역시 각각 선거와 탄핵 절차를 거쳤지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오진 않았다. 피플 파워 30년에 얻은 건 도널드 트럼프 뺨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뿐인 필리핀처럼 ‘피플 파워 피로’에 걸릴까 겁난다. 노무현 탄핵 유도로 재미 본 세력이 이번에도 나라와 역사 발전을 거꾸로 돌려선 안 될 일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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