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프로그램의 자막에 ‘팩트 폭력’이란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팩트(fact)+폭력’을 합친 신조어로, 사실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콕 찔러 공격한다는 뜻이랍니다. 넓게 해석하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티끌 모아봤자 티끌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등 우리에게 친숙한 교훈을 현실 밀착형 조언(?)으로 뒤집어 놓은 ‘박명수 어록’도 이 범주에 속한답니다.
남이 하면 ‘팩트 폭력’이 되겠으나 내가 스스로 치부나 과오를 드러내거나 자신을 폄하하는 것은 ‘셀프디스’라고 합니다. 자신(self)과 무례함(disrepect)을 합친 말입니다.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자아비판’과 흡사하지만 젊은 세대는 가볍고 유쾌한 ‘웃음 코드’로 셀프디스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대선을 앞둔 정계에도 ‘셀프 디스’ 전략이 선보였습니다. 국민의당에 입당한 국민주권개혁회의 손학규 의장이 18일 페이스북에 영화 ‘광복절 특사’를 패러디한 ‘인생은 타이밍이다’이란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손학규가 결단하는 날엔 무언가가 터지는 웃픈(웃기고도 아픈) 현실!’이란 부제를 보면 대략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시겠죠?
내용인즉, 자신이 중대 결단을 할 때마다 초대형 이슈가 터지는 바람에 기대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풍자한 겁이다. 손 의장은 “2월 17일 (국민의당) 입당식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징크스 ㅠㅠ”라며 ‘이재용 구속’과 겹친 타이밍을 최근 사례로 언급했습니다. 그가 작년 정계복귀를 선언했을 때는 북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답니다. 2006년 ‘100일 민심대장정’의 마지막 날에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고, 2010년 첫 장외투쟁에 나선 다음 날은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발생했답니다. 듣고 보니, 스스로 징크스라 고백할 만한 ‘불운한 타이밍’의 연속이었네요.
인생만 아니라 역사의 물길도 타이밍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를 딱 맞추는 일은 매우 어렵죠. 자신은 물론 국가의 행로를 좌우하는 대통령이나 대선주자들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지킬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땅의 명운을 책임진 사람들이 마땅히 되새겨볼 만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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