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영국 태생의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1933∼2015)가 삶의 끝자락에서 남긴 글은 여운이 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을 펴낸 색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렸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리처드 파인먼(1918∼1988) 역시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하다. 그가 과학의 울타리를 넘어 대중에게 다가선 것도 글 솜씨 덕분이다.
▷이들은 문재(文才)를 타고났겠으나 인문계든 이공계든 ‘전공 불문’ 글쓰기 능력을 길러주는 영미 대학교육의 수혜도 받았을 터다. 하버드대가 신입생 대상 글쓰기 프로그램을 의무화한 것이 1872년. 20년간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낸시 소머스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기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글쓰기가 미래 경쟁력이란 의미다.
▷이 대학의 분야별 글쓰기 가이드북 가운데 생명과학 편은 왜 글쓰기가 중요한지 이렇게 설명한다. ‘실험노트를 작성하고 연구제안서를 쓰고 연구논문 형태로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 모두 과학적 사고에서 없어선 안 된다.’ 한국은 어떤가? 서울대가 ‘글쓰기 지원센터’ 설립 추진을 밝힌 것이 불과 두 주일 전이다. 앞서 발표된 자연과학대 신입생 253명의 ‘글쓰기 능력 평가’는 충격적이었다. 3명 중 1명은 70점 미만에, 65명은 정규 글쓰기 과목 수강조차 힘든 수준이었다.
▷휴대전화 문자, e메일 등 글을 통한 의사소통은 늘고 있다. 하지만 단문 아닌 장문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은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몸의 근육을 키우려면 운동이 필요하듯 생각의 근육을 키우려면 글쓰기가 최고의 방법이다. 글쓰기와 사고력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다.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신문을 날마다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소머스 교수는 “짧은 글이라도 매일 써보라”고 조언한다.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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