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안경환 후보자가 낙마한 법무부 장관에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국민권익위원장에 박은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박 후보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박 권익위원장은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시민단체 출신 학자다. 문 대통령은 어제까지 현행 정부직제상 17개 부처 중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외한 15개 부처 장관을 임명했는데 국회의원 말고 가장 눈에 띄는 경력이 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학자들이다.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낙동강 페놀사태로 환경운동에 뛰어든 시민운동가 출신이고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이면서 역사학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청문 대상은 아니지만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도 재야에서 활발하게 재벌개혁운동을 해온 사회참여형 학자들이다. 법무부 장관에서 낙마한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전력이 있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선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비(非)법조 학자 출신인 박 후보자를 발탁한 것은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 등을 지내며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박 후보자는 지명 소감을 통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과 법무부의 탈(脫)검찰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2015년 칼럼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으로 공안(公安)적 판단의 틀에 맞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반대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통진당의 이적성을 고발해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법무부와 반대 입장에 섰던 사람이 법무부의 수장을 맡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통진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 소수의견을 냈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불투명해진 마당에 통진당 해산 반대 학자 출신을 또 내세워야만 했는가.
문 대통령은 기득권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 이른바 ‘적폐청산’에 적임자라는 인식을 하는 듯하다. 비(非)제도권 인물이 참신하긴 하지만 국정운영 경험부족과 의욕과잉으로 인한 균형감 부족, 자기관리 부실 같은 한계도 있다. 개혁성향에 집착해 정부 출범 초기 인재 풀을 너무 좁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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