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미테랑·슈미트… 우파 지식인 아롱·포퍼 존경
리영희를 존경한다는 문재인… 편향된 역사인식 갖고 訪美
동맹은 법 아니라 힘이 좌우… 트집도 응석도 통하지 않는다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은 기자들을 싫어했고 특히 좌파 기자들을 싫어했다. 그가 존경하던 유일한 칼럼니스트는 레몽 아롱이었다. 공산당과의 연합에 반대하는 아롱의 가차 없는 비판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고 미테랑의 심복이었던 자크 아탈리가 ‘미테랑 평전’에서 전했다.
독일 최초의 사회민주당 총리는 빌리 브란트이긴 하지만 그가 집권했을 때만 해도 독일 국민은 사민당의 수권 능력을 반신반의했다. 더 이상 급진세력의 숙주 역할을 하지 않고 국가 안보에 불안을 주지 않은 사민당의 이미지는 브란트의 뒤를 이은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만들어냈다.
슈미트는 칼 포퍼를 존경했다. 그는 회고록 ‘구십 평생 내가 배운 것들’에서 “1980년 영국 런던에서 포퍼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포퍼의 사상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이후 1994년 포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는 친구로 우정을 나눴다”고 썼다.
포퍼는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아롱은 1965년 ‘사회사상의 흐름’이란 대작(大作)을 써서 마르크시즘에 내장된 전체주의적 속성을 비판했다. 미테랑이나 슈미트가 유럽의 대표적 우파 지식인에 끌렸다는 것은 그들이 추구한 좌파 노선이 공산당이나 급진파와 얼마나 다르며, 한국의 좌파들과도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그런 슈미트였기에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 기독민주당을 미국의 앞잡이로 모는 급진파들이 똑똑히 들으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1949년 이후 서독인들이 누리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번영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얻은 것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지혜로운 배려가 없었다면, 이들이 소련으로부터 서독을 방어해주지 않았더라면 서독인 자신들의 노력과 수고는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이란 책에서 “대학 시절 나의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었다”고 썼다. 그는 대선 직전 동아일보가 국민들과 널리 함께 읽고 싶은 책이 뭐냐고 물었을 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들었다. 한국 현대사를 반미(反美)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전환은 리영희의 미국 베트남전 비판에서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 사람도 리영희였다. 미테랑이나 슈미트 같은 서구 좌파 정치지도자들과 비교하면 우리 좌파 정치지도자들의 세계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좁고 편향돼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오늘 취임 후 첫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한국을 서독과 함께 전후 가장 성공한 나라로 만든 동맹을 분단의 장본인이자 통일의 훼방꾼으로 바꾼 뒤집힌 역사인식이다. 그런 역사인식으로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그제 청와대에 초빙된 전직 주미 대사들이 문 대통령에게 해준 충고는 ‘세부적인 대화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모호함이 문 대통령에겐 최선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맹은 쟁점을 회피한다고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동맹은 법이 아니라 힘이 좌우하는 관계다. 법이 좌우하는 곳에서는 권리를 내세워 트집을 잡고 응석을 부릴 수 있다. 힘이 좌우하는 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러려면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미테랑이 1983년 주요 7개국(G7) 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데 그가 시비를 걸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주먹으로 탁자를 탁탁 치다가 긴 탁자 맞은편으로 미테랑을 맞히려는 듯 커다란 서류 하나를 던졌다. 다행히 서류는 탁자 한가운데 꽃과 커피잔 위로 날아가 떨어졌다. 미테랑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고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미테랑 평전’에 나오는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다. 무례한 레이건과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사회주의자의 자존심까지 버린 미테랑, 이것이 동맹의 민낯이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왜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까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아양을 떨었겠는가.
‘인문학 일러스토리 1: 모든 것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란 책을 최근 읽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이 곁들여진 쉽지만 알찬 고대 그리스 입문서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생존을 위한 동맹이 눈물겹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의 생존은 동맹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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