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 서울지하철 4호선 고잔역 바로 옆. 300여 m에 걸쳐 폭이 좁은 철길이 놓여 있다. 뽀얀 옛날식 역 간판엔 ‘원곡←고잔→사리’라고 써 있다.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의 흔적들이다. 철로 중간에 이런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아 옛날이 그립다 수인선 통학생’ ‘스무 살의 나와 다시 만나다’….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수인선은 1937년 일제 경제침략의 수단으로 개통되었다. 군자 소래 남동 등 염전지대에서 생산하는 소금을 인천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일제가 개설한 것이다. 수원, 고색, 어천, 일리, 원곡, 군자, 소래, 남동, 송도, 인천항. 광복 이후 수인선은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출퇴근과 통학의 교통수단이었고, 소래포구 사람들은 열차가 들어오면 객실에 올라가 열심히 젓갈을 팔았다.
수인선은 낭만의 상징이기도 했다. 수인선을 타고 소래포구 어시장을 찾는 사람도 많았다. 탁 트인 갯벌 위 철교를 흔들거리며 건너가는 파란색 자그마한 객차. 소래포구를 가로지르는 소래철교는 수인선의 상징이었다. 협궤열차의 철로 폭은 겨우 762mm. 표준(1435mm)의 절반 좀 넘는 정도다. 그렇다 보니 객실 폭도 좁았고 객차가 흔들리면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사람들의 무릎이 부딪히곤 했다.
도로가 뚫리고 버스가 활성화되면서 1980년대 들어 수인선 승객은 줄어들었고 결국 1995년 12월 31일 운행을 마감했다. 수인선이 멈추자 추억을 간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일환으로 소래철교를 보존해 인도로 꾸몄다. 하지만 매력과 정감이 별로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침목과 레일을 평평한 높이로 덮어 놓았기 때문이다. 침목과 자갈돌을 밟고 레일을 오르내릴 수 있어야 열차 철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래철교는 편리함을 위해 철길의 본질을 버린 경우다. 고잔역 주변 철길 구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철길 건널목, 차단기, 신호등, 표지판도 설치했지만 그저 모형 같다는 느낌이다. 추억이 제대로 되살아나질 않는다.
소래철교 옆으로는 새로운 수인선 전철이, 고잔역 옆으로는 4호선 지하철 차량들이 열심히 질주한다. 그 옆에서 협궤열차 수인선의 흔적은 왜소하기만 하다. 소래철교, 고잔역 외에도 수인선의 흔적이 몇 군데 더 남아 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그 추억을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되살릴 수는 없는 걸까.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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