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운동이 한창 시작되던 1990년대 말 고려대의 한 교수가 이 운동을 주도하는 동료 장하성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벌 지배구조가 개선돼 투명성이 높아지면 정말 주가가 크게 오를까?” 한국 대표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해소되느냐는 질문이었다. 장 교수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큰맘 먹고 투자를 한 이 교수는 나중에 대박을 쳤다고 한다. 장 교수가 직접 소개한 일화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10주 갖기 운동’으로 소액주주운동에 일반인을 끌어들였다. 삼성전자가 20만 원, 포스코는 10만 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고려대 연구실로 장 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장 교수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자신을 초청해 출장을 가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한국 기업의 현황을 설명하고 다닌다고 알려줬다. 그때 열변을 토하던 장 교수의 얼굴에서 기업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읽은 기억이 남아 있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2개 종목, 48억여 원어치의 주식을 처분한 사실이 6월 말 관보에 실렸다. 부인과 자녀의 주식까지 모두 합하면 54억 원이 넘는다. 몇몇 종목은 1∼3주 정도여서 소액주주운동 하던 때 샀던 것들을 계속 갖고 있은 듯하다. 하지만 1000주, 2000주 넘은 종목들도 있었고 CJ E&M은 1만3630주나 됐다. 주식 수와 종목, 투자 금액만 보면 ‘큰손’ 전업 투자자와 다를 바 없다.
▷일부 증권업계 종사자는 시민운동 하던 교수가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느냐고 놀라워했다. 만약 그가 인사청문회를 치러야 하는 자리에 지명됐다면 자금 출처와 매입 경위 등을 호되게 추궁당했을 것이다. 장 실장이 우량주에 정석대로 투자했다는 또 다른 평가도 있긴 하다. 단기 급등을 노리는 이른바 잡주(雜株)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함께 소액주주운동을 했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10주의 보유 주식을 처분한 돈이 800만 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뭔가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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