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지금은 북한이 대화의 문으로 나설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나서는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여를 위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고, 바흐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북한이 동의하면 무엇이든 동의한다’고 했던 말을 연상시킨다고 화답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다양한 대북 대화·교류 메시지를 내놓으며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내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로 출국한다. 독일에서는 문재인표 대북정책 청사진도 밝힐 예정이다. 2000년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처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대북 구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미 공동성명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문 대통령의 남북 대화 재개 열망’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가 확인됐다고 보고 본격적인 유화정책에 나서는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두 정상은 중국에도 대북 압력에 더 큰 역할을 요구하기로 했다.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 중국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한 것도, 한미 공동성명에 ‘최대의 압박’을 위한 새로운 조치 시행을 규정한 것도 지금은 대북 압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미국 측 정책기조를 대변한다.
이번 G20 정상회의는 북한 압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체제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대북 제재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까지 낀 한미일 3국 정상회의도 예정돼 있다. 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문제로 껄끄러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가능성도 높다. 훨씬 고난도의 외교무대인 다자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대화 중심의 대북정책을 내세울 계제가 아니다.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게 될 주요국 정상들도 대부분 우파 출신이고 대북 강경책을 선호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의 남북관계 주도권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 나아가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와 따로 놀 수 없다. 지금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에 집중하는 단호하고 일치된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운전대를 잡게 됐다는 식의 편의적 해석으로 속도를 내서 국제적 대북 공조의 궤도에서 이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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