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요즘 가장 자주 하는 인사가 “본 바캉스(Bonnes vacances·휴가 잘 보내)”다. 프랑스는 1년에 휴가 기간이 5주다. 매달 법적으로 2.08일의 휴가가 쌓인다.
한국인의 평균 휴가 기간은 8일. 올해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로 평균 3일을 계획 중이라는 한 사이트의 조사도 있었다. 주말을 포함해서 4박 5일 간다는 얘기다. 프랑스인들은 보통 여름에 3주 정도를 휴가로 쓴다. 그러다 보니 7월 중순부터 8월 중하순까지 동네 대부분 상점의 셔터가 내려져 있다. 나머지 2주는 겨울이나 부활절 등에 나눠 쓴다.
4박 5일과 3주의 휴가는 단지 길고 짧은 차이만은 아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경제·사회·문화 시스템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장 올해부터 한국도 5주 휴가를 가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사회 위화감이 커질 것이다. 돈 많은 부유층은 호화 해외여행을 떠나고 저소득층은 휴가비를 아끼려고 집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을 못 받거나 유치원에서 급식을 먹지 못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가게 임차료나 인건비 부담 때문에 3주 동안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는 오히려 바캉스가 사회적 위화감을 해소하는 창구다. 한 프랑스인은 “프랑스에서도 돈 많은 이들은 해외로 요트 여행을 떠나지만 반대로 아무리 돈 없는 이들도 하루에 10∼20유로(2만 원 안팎)만 내면 전기, 수도 시설에 수영장까지 마련된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며 “하층민들도 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은 가난한 이들에게 심리적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들은 지방자치단체나 국가 지원으로 승마나 수영 캠프를 이용할 수 있다. 동네 문화센터마다 프로그램들이 넘치는데 소득별로 내는 돈이 다르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시간당 2유로(약 2600원)만 내면 되고 고소득자는 그보다 열 배 이상 내야 한다.
올해 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이 예상하는 평균 여름휴가 예산 비용은 1982유로(약 257만 원)다. 휴가를 위해 돈을 번다는 이들도 꽤 많다. 자식에게 돈을 남겨줘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고, 노후에 두둑한 연금이 보장되는 것도 휴가 씀씀이에 후한 배경이다.
4박 5일과 3주의 휴가는 패턴이 다르다. 관광지 위주로 북적이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인들은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시골 및 캠핑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 경제도 살아난다. 한 조사에서 프랑스인의 63%가 올해 국내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프랑스의 유급휴가는 1930년대에 시작됐다. 프랑스대혁명의 후예답게 1936년 총파업에서 주 40시간 근로제와 2주일의 유급휴가를 쟁취했다. 이때부터 바캉스 기간은 1주일씩 늘어나 1985년에는 5주로 정착됐다. 그러나 ‘바캉스의 나라’ 프랑스도 점점 5주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올해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여름휴가를 2주만 가겠다고 응답한 사람도 많아졌다. 결국 문제는 팍팍한 경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전용기 안에서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겠다”고 했다. 꼭 그 말을 지켰으면 좋겠다. 휴가를 간다는 건 그만큼 삶에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의 부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지난주 “누구도 내게서 휴일을 뺏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자신만만하게 5주 휴가를 가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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