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뮬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한 알기 쉬운 물리학 강의로 세계적 팬덤을 이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과학 자문이었던 그는 원래 기후변화를 믿지 않았다. 2009년 그는 그때까지 발표된 모든 기온자료를 분석해 “지난 250년간 지구 기온이 섭씨 1.39도 올랐으며 이는 전적으로 인간 활동 때문”이라는 결론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객관적 사실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가다 보니 기후변화가 분명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던 것이다.
원전 일시중단 나쁜 선례
2012년 발간한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에서 뮬러 교수는 대통령이 다른 분야는 몰라도 에너지만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너지에 관한 사람들의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데서 비롯하는데 대통령이 에너지의 속성과 한계를 숙지해야 국방 경제 재난 등을 다룰 때 올바른 정책 결정을 내리고 국민과 의회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뮬러 교수에 따르면 첫째, 원자력은 생각보다 안전하고 핵폐기물 저장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대중이 원자력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못된 정보와 낯섦 때문이다. 둘째, 지구온난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수익성 있고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을 찾아내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를 통제해야 한다. 셋째, 태양광 풍력 바이오연료 등 재생에너지는 잠재력이 크지만 기술적 한계도 분명하고 천연가스와 경쟁해야 한다. 넷째, 수소에너지 시장은 미래가 없으며 지열 조석 파동 등 신기술 에너지는 대규모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없다. 주장은 명쾌하고 논지는 선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이 석학의 조언과 정확히 거꾸로 가고 있다.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가 불가피했다고 해도 공정이 30%가량 진행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일시 중단한 점을 특히 이해하기 어렵다. 원자력을 반대해서라기보다는 국가의 안위와 미래세대의 생존에도 중요한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그렇다. 청와대는 공사 중지가 대통령의 고뇌 어린 결정이라고 말했지만 에너지 문제는 고독하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 그룹의 조언을 들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 주변에 똑똑한 과학기술 전문가 그룹이 없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60개 대학 원자력 에너지 전공 교수들로 구성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들이 어제 발표한 성명서는 참다 참다 못해 나온 비명 같다. 이들은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숙의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지난 성명서에서 문 대통령의 안전 우선 친환경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을 지지했던 이들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공론화 계획을 보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대통령에겐 과학자가 필요해
교수들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 비전문가에게 에너지 정책이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과학의 영역이라는 뮬러 교수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뮬러는 “에너지는 잘못 이해되고, 정치적 이슈가 되겠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과학과 객관적 분석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에너지만큼은 여론조사나 높은 지지율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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