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 시가 깃든 삶]그 사람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그 사람에게―신동엽(1930∼1969)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신동엽 시인은 천수의 복을 누린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겨우 사십 년 동안만 이 땅 위에 머물렀다. 또 신동엽 시인은 시를 오래 쓴 시인도 아니었다. 등단하고 나서 딱 10년만 시인이었다.

그런데 이 10년이라는 표현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에게 시인이었던 것은 10년이었지만, 신동엽 시인이 우리에게 시인이었던 것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인간 신동엽은 40년을 살았지만, 신동엽이 쓴 시는 60년을 살고 있다.

시인은 자신에게 시를 쓸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일까. 절창을 아낌없이 쓰고 떠났다. 이 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시 ‘그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무겁고 칙칙할 것 같지만 작품은 의외로 선선하고 곱다. 고맙게도 시인은 이 세상이 참 지옥 같다고 말하지 않고, 아름다운 하늘 아래의 세월이라고 말한다. 다행히도 시인은 이 세상에 나 혼자 왔다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 않고. 너도 왔고 나도 왔고 너도 가고 나도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삶을 살고 있지만 더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겁날 때가 있다. 우리는 아직 삶을 끝낸 것이 아니지만, 삶의 끝을 생각해 보면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 삶의 오늘과 이후는 덜 겁나고 덜 무섭다. 왔다 간 모든 존재들에 기대어 조금 덜 무서워진다. 삶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추억이라는 말에 조금 덜 겁난다. 나아가 시인이 살았던 40년과 시가 살아온 60년 사이에서 시를 읽으니 삶이 지닌 의미가 더욱 유장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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