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대통령의 ‘독일어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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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재능 있는 사람이 배우는 데 영어는 30시간, 프랑스어는 30일이 걸리고 독일어는 3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특유의 신랄한 위트로 독일어를 배울 시간적 여유는 죽은 사람에게나 가능할 것이라고도 했다. 독일어는 미국인에게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가 아닌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공동 언론발표에서 ‘구텐 아벤트(Guten Abend·안녕하세요)’, ‘필렌 당크(Vielen Dank·매우 감사합니다)’라며 독일어로 인사했다. 이 정도야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6·25전쟁 직후 한국에 파견된 독일 의료지원단을 만나 방명록에 ‘Ihre Hilfe bleibt unvergessen(당신들의 도움은 잊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이라는 독일어를 남겼다는 데는 놀라운 기분이 든다.

▷문 대통령은 경남고에 다닐 때부터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고 한다. 사법시험 1차 과목에서 외국어로 영어 대신 독일어를 택해 공부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가 어떤 외국어를 택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가 방명록에 남긴 고급스러운 독일어는 물어보고 쓴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미국 가서는 영어 한마디를 하지 않던 그가 독일에서는 애써 독일어를 사용하려 했다는 게 흥미롭다.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국인 중 한 명이 작곡가 윤이상이다. 김정숙 여사는 베를린의 윤이상 묘소를 방문해 대통령 부부의 이름으로 헌화했다. 윤이상은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한국에서 2년간 복역한 뒤 독일로 돌아가 베를린에서 생을 마쳤다. 문 대통령은 경남 거제 출신이고 윤이상은 경남 통영 출신이다. 동베를린 사건이 조작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고 고향땅을 밟지 못한 그의 사연이 안타까운 것은 틀림없다. 각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을 헌화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에 빛이 바랜 것도 안타깝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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