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개꼬리가 나왔다. 옥수수는 꽃이 피고 나서 중간 부분에서 열매가 두 개 정도 열리는데 이 꽃을 흔히 개꼬리라고 부른다. 금년엔 옥수수를 세 차례 나눠 심었다. 작년에 수확한 옥수수 맛에 반한 탓에 8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오랫동안 싱싱한 맛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옥수수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들깨를 심을 요량이었는데 따먹을 생각만 했지 그 다음 들깨 심을 시기를 깜박하고 너무 늦게 심은 것이다. 들깨는 초복에 심으면 서 말 나오고, 중복에는 두 말, 말복에는 한 말이라 했는데….
올해 밭작물은 시기를 조금씩 놓쳐 심었다. 작년 집중 호우에 밭 정리를 다시 한 탓도 있었지만 한창 농사 준비를 해야 할 3, 4월에 여행 등 이런저런 대소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기도 늦고 유난을 떤 가뭄 때문에 고구마 일부가 말라 버렸고 밭 끝 쪽에 심었던 마늘은 거의 수확을 못 했다. 역시 두세 번 실패를 해야 감이 조금 생길 모양이다.
며칠 전 아래쪽 컨테이너 집에 사는 부부가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 부부는 5년 전 밭을 사 일주일에 3일 정도 머물면서 아로니아를 가꾸고 있다. 결혼 안 한 막내아들 때문에 서울을 오가느라 아직 집을 짓지 않고 컨테이너에서 지내는 것이다.
남편은 정말 부지런하고 모든 농작물을 오와 열 정확하게 맞추어 심는다. 꼼꼼한 남편과 달리 안주인은 다르다. 체격도 좋고 성격도 무난하다. 특히 전라도 여성답게 음식 솜씨도 뛰어나며 어떤 일도 겁내지 않고 해낸다. 지난번에도 내촌천에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였는데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이번엔 막내아들 결혼식에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주어 고맙다면서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이장네 부부, 옆에서 한옥 펜션을 운영하는 부부 등 다섯 집이 함께했다. 저녁 늦게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가뭄 걱정에서 시작한 대화가 일상생활 이야기를 거쳐 어떻게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까지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결론은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주민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다섯 집이 보름에 한 번씩 순번을 정해 저녁식사를 마련하기로 했다. 앞으로 참여하는 집을 늘려 마을 주민 모두가 모여 식사도 하고 막걸리잔도 나누면서 마을 분위기를 띄워 가기로 했다.
농사가 시작되면 바로 옆집 사람 얼굴 보기도 정말 힘들다. 매일 아침 5시면 이미 아침을 먹고 밭에 나간다. 서로들 멀리 떨어진 밭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다.
일 년에 몇 번, 마을 대동회나 공동작업을 할 때 외에는 서너 사람이 함께하는 일조차 드문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이제 58년 개띠이며 젊고(?) 의욕적인 이장님이 앞장서고 마을 주민들이 뜻을 함께하면 가족만큼 정겨운, 더 좋은 마을이 가꾸어질 것이다.
―이한일
※필자(61)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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